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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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동상을 세우자

2009-09-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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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치 지도자도 오점이 없을 수 없다”고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실토했다. 그래서 큰 배는 깊은 바다가 필요한지 모른다.

미국에는 훌륭한 위인을 기리는 상징적인 지도자 동상 1,000여개가 각지 공원과 캠퍼스에 건립돼 있다. 위대한 지도자들의 정신을 기려 이름을 딴 박물관, 도서관, 기념관 등도 수천 도시마다 즐비하다. 특히 수도 워싱턴 DC에는 동상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지난 주 DC 정부는 연방국립공원국과 더불어 백악관 근처의 장군 동상 보수 공사 하나에 1,600만 달러 예산을 책정했다. 경제 불황인데도 반대나 공과를 따지는 비난여론은 전혀 없었다.

서울에 있었던 이승만 건국 대통령 동상이 목이 잘리고 군중데모에 이끌려 사라진 지가 반세기가 지났어도 아직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주 광복절 64주년을 보내며 국부(國父)로 모시던 이대통령이 무관심 속에 잊혀진 채로 방치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필자도 4.19데모 때 대학생으로 독재를 반대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 인물 자체와 인격전체를 부정했던 것은 아니다. 4.19 묘지에 안장된 동지들까지 전체적인 건국이념과 자유 민주주의 철학까지 반대하며 돌을 던지지는 않았다고 본다. 학생들 투쟁은 ‘독재와 장기집권 반대’였다.

대한민국은 봉건 왕조가 아닌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 살고 있으면서 그 이념으로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승만 박사의 정신을 계승해 왔다. 서울 거리에 이승만 동상 하나 없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좋은 그림에 눈동자가 빠진 것과 같고, 후세 교육에도 오점이 아닐 수 없다.

청년 이승만은 구한말에 ‘반정부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집안이 망한다고 부친이 시위현장을 찾아와 ‘그만 두라’고 눈물로 호소했을 정도였다. 체포된 뒤 탈출했지만, 다시 체포돼 투옥됐다. 감옥 안에서도 조선왕조를 과감하게 ‘공화제’로 바꾸자는 ‘독립정신’을 집필했고 종신형을 선고받고 5년 7개월 만에 풀려났다. 이후 미국유학과 독립자금모금에 나섰고 임시정부 설립을 도우며 해외에 조선이 자주국임을 통보하며 애국지사의 삶을 살았다.

그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1941년)이 있기 전 그가 뉴욕서 이미 일본의 미국공격을 예견한 ‘일본 안과 밖(Japan Inside Out)’을 출간한 선각자였다. 미국서 교육 받고 해외독립운동을 한 그는 미국의 가정 가까운 동반자로 인정받았으며 국익을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받아 내기도 했다. 이승만 동상과 기념사업을 ‘한 개인의 운명’으로 방관 할 수 없지 않은가. 나라 형색을 갖춘 국가 치고 건국 대통령 동상이 없는 나라는 없다.

조지 워싱턴 동상은 전국적으로 널려 있고, ‘러시모어’산 동상에도 새겨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하고 있다. 유럽의 로마, 런던, 파리, 아테네가 부러운 것은 그들 나라의 왕으로부터 훌륭한 장군까지 훌륭한 지도자들의 동상과 흉상들이 골목마다 가득하고 소중한 자산으로 보호하는 높은 문화수준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조상을 숭앙하는 한인들 정서로 이성을 찾아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김현길 / 지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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