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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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을 사이에 둔 문화충돌

2009-08-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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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니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옆집과 선을 긋는 담장과 같았던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던 소나무 가지들이 모두 잘려나간 것이 아닌가? 가지를 쳐낸 소나무는 앙상한 뼈만 남은 모습이다. 며칠 전 십대의 세 아이를 둔 이웃집 중년 여인이 우리 집 소나무들이 이층 자기 침실 창문을 가려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는 소나무 윗부분의 가지만 치는 게 어떠냐고 물어왔다.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소나무가 잔인하게 처형당할 줄을 몰랐다. 우리는 이웃집과 담장너머로 그 동안 민간차원의 외교를 벌려왔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 긴 이야기도 나누고 채소 씨도 나누어 심고 우리들은 서로 따뜻한 이웃으로 느껴졌다.

이웃집은 소나무를 잘라 내었으니 아침저녁으로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이 변화무쌍하게 빛깔이 변하는 바다를 침실 창밖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벌레를 씹은 것처럼 마음이 불편하다. 울창한 소나무 가지들을 쳐내었으니 수영장이 있는 그 집 뒷마당이 훤하게 바라보인다. 그들은 주말이면 신생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온 대가족이 한집에 모인다. 뒷마당 수영장에서 손바닥만한 비키니로 몸을 가린 10대들과 침팬지처럼 온몸이 털로 덮인 남자들의 육체와 음식의 향연이 벌어진다. 그리고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음반을 높은 볼륨으로 하루 종일 틀어놓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한국 뽕짝노래로 맞대응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내가 살고 있는 현주소인 담장을 끼고 있는 타인종과의 이질문화의 벽은 깨부수기가 힘들다.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오는 피해의식과 과잉반응이다. 우리 이웃집들은 모두 이탈리아, 시칠리아, 아일랜드 등 비 앵글로색슨계들이다.


이들이 메인스트림 속으로 동화되고 흡수되기 전까지는 비주류에 속하는 이민자들이었다. 그들이 백인 주류범주에 포함되기까지 말할 수 없는 설움을 겪었을 텐데도 피부색갈이 희다는 이유만으로 은근히 유색인종들을 얕잡아 본다.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내가 느끼는 현주소의 체감온도는 뼈가 시리도록 차갑다.

미국의 삼권분립 체재에서 행정부의 수뇌로 최고 통치권자가 흑인이다. 그리고 사법부의 최고 기관으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히스패닉계 소니아 소토마요 대법관이 탄생했다. 그렇다고 인종갈등이 하루아침에 깨끗이 사라진 것일까? 다소 희석이 되었으나 타 인종들과의 이질감을 극복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앞으로 급증하는 소수계 인구는 미 건국의 초석이었던 앵글로 색슨계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압박요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인종간의 다양성. 무한경쟁에 돌입하면서 역동성의 진정한 국가 통합의 꽃을 피울 것이다. 그래서 담장을 사이에 둔 문화충돌과 분쟁도 봄눈처럼 녹을 것이다.


박민자 /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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