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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 유아기의 이중 언어교육

2009-08-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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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말 섞어 쓰지 말아야
부모도 학교 일에 적극 나서야

이제 만 세살밖에 안된 루카는 3개 국어를 한다. 엄마에게는 일본어를, 아빠에게는 체코어를, 교사인 내게는 영어로 말을 한다.


처음 우리 반에 들어 왔을 때, 루카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집에서 일본어와 체코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다른 면에서는 영리한 아이인데, 아무래도 세 가지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루카의 부모와 나는 루카의 언어발달을 어떻게 도와주는 것이 좋을지 자주 의논을 하였다.

루카의 부모는 미국에 유학을 와서 결혼을 하게 된 부부이고, 두 사람은 영어로 대화를 한다. 그렇다면, 아이에게도 영어로 말을 하면 쉽게 말을 배우지 않을까? 하지만 루카의 부모는 루카를 학교에 데리고 올 때마다, 루카에게 각자의 모국어로 얘기를 하였다.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의무였지만, 루카와 의사소통을 하려고 일본어와 체코어를 몇 마디 배웠다.

학교에서 나와 의사소통을 하려면 루카는 내 등을 톡톡 치거나 손을 잡아당기곤 했다. 뭔가 해서 따라가 보면, 자기가 쌓아놓은 블럭이나 일렬로 세워놓은 동물들을 보여주곤 하였다. 영어로 다른 아이와 대화를 할 수 없었던 루카는, 처음 두어 달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불자동차와 스쿨버스를 가지고 혼자 놀았다. 다행히 일본인인 자기 엄마와 비슷한 얼굴을 한 나와는 쉽게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루카는 미국 아이 중에서도 유난히 말을 잘하는 에밀리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 뒤로 루카와 에밀리는 늘 함께 놀았고, 두 아이의 부모는 두 아이가 친한 것을 알고 플레이 데이트를 하며 학교 밖에서도 만나게 되었다.

루카는 그러면서 조금씩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고, 6개월이 지나자 여러 단어로 된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점심시간에 홍당무를 먹는 친구에게 “나도 홍당무를 좋아해. 우리 집에 홍당무가 있어”라고 하였다. 루카가 영어로 말을 시작하는 데는 몇 달이 걸렸지만, 영어를 알아듣고 이해하는 능력은 그보다 훨씬 전에 발달하였다. 서클시간에 파란색으로 된 것을 찾는 게임을 하면, 루카는 반 아이들 중에서도 제일 먼저 바다가 있는 그림을 손으로 가리켰다.

태어나자마자 이중언어를 배우는 아이들은 두 가지 언어를 혼동하여 언어발달이 늦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가 두 가지 언어를 배워서라기보다는 그 아이의 전반적인 언어발달이 늦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돌이 되기도 전에 말을 시작하는 아이가 있고, 세 돌이 되어서 말을 하는 아이가 있는 것처럼 이중언어를 배우는 속도도 아이들마다 다르다. 그리고 모국어는 빨리 배웠지만 학교에 가서 영어를 오랫동안 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
어떤 과정을 거치든, 어렸을 때 모국어와 더불어 다른 언어를 배우게 되면 그 언어를 native speaker처럼 말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아이의 지적발달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중언어를 배우는 아이를 키울 때 부모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각 부모가 각기 한 가지 언어를 쓴다”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좋다. 부모가 같은 모국어를 쓸 때도 그렇지만, 루카처럼 부모가 다른 언어를 쓸 경우에도, 두 가지 언어를 섞어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어떤 언어를 배우건 한 가지 언어를 잘 배우면 다른 언어를 배울 때 그 체계를 적용하게 된다. 두 가지 언어를 한꺼번에 배우거나, 루카처럼 세 가지 언어를 배우는 경우에도, 루카의 부모처럼 영어와 모국어를 섞지 않고 각자의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모국어를 먼저 배운 다음 영어를 배우는 아이의 경우, 학교에 들어가면 쉽게 영어를 할 것이라고 기대를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몇 달도 안 되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아이도 있지만, 일 년이 지나도록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그것은 아이의 지적 능력이나 모국어의 능숙도에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하버드 대학의 패튼 테이보즈 박사는 ‘One Child, Two Languages’라는 책에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가 영어를 배우는데 영향을 미치는 네 가지 요인을 지적하였다.

첫 번째는, 아이가 영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흥미도이다. 이것은 부모에 의해서 결정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그 아이의 성격이다. 외향적이고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는 영어를 빨리 배우게 된다. 세 번째는, 아이가 영어를 하는 환경에 얼마나 노출되었는가 이다. 넷째는 그 아이의 나이다. 모국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두 살된 아이가 또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는, 모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네 살이나 다섯 살된 아이가 영어를 쉽게 배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언어에 대한 자질과 성격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부모는 아이가 영어를 좀 더 쉽게 배우도록 도와줄 수 있다.

아이의 성격이 외향적이 아니더라도, 부모는 루카의 경우처럼 영어를 잘하는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플레이 데이트를 마련해 줄 수 있다.

아이가 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하려면, 부모가 학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다. 학교의 행사나 pot luck 등에서 다른 부모들을 만나게 되면, 아이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이에게 설명해줄 수 있고, 아이의 플레이 데이트를 마련하기도 쉬워진다. 아이의 학급에 가서 모국어로 된 노래를 가르쳐 주거나, 모국 어로된 그림책을 읽어 주며, 자기 가정의 특별한 음식을 함께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홍혜경 <프리스쿨 특수교육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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