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관리 이민가정의 공통고민
끊임없는 관심과 설득이 중요
지난해 6월에 졸업한 학생으로부터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매년 수백 명씩 졸업하는 학생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학생들이 있는데, 봉투 위에 쓰여 있는 이름이 바로 그런 학생 중의 한 명이었다.
웬일인가 해서 편지를 열어보니, 학생이 쓴 것이 아니고, 학생의 어머니가 쓴 편지였다. 그렇게 속을 썩이던 딸아이가 이제는 정신을 차려서 커뮤니티 칼리지 첫 해를 좋은 성적으로 마치고 올 가을에 2학년으로 올라가게 되었으며, 2학년에도 좋은 성적을 유지하면 졸업 후 UC로 편입할 수 있다는 말을 카운슬러로부터 들었다면서 이것이 다 고등학교 4년 동안 도와주신 선생님의 덕분이라고 감사하다는 편지였다.
타니아의 부모는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에서 어린 남매를 데리고 이민 온 가정이었다. 많은 이민가정과 마찬가지로,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선 두 내외가 시작한 일이 가정집 청소였다.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베이비시터에 맡겼다가, 때로는 불법인 줄 알면서도 아이들만 집안에 남겨놓기도 하면서 5, 6년 동안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일했다고 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버려두다시피 한 아이들이 그런대로 공부를 잘 따라가서 이제 한숨 돌리게 되었고, 그러는 중에 타니아는 고등학교에, 동생은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문제는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학교에 다니던 타니아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웬일인지 ‘말없고 화가 나 있는’ 아이로 변했다는 것이었다.
원래 조용한 성격이라서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날이 갈수록 말 한마디 안하며 지나는 날이 많아지고, 무슨 이유인지 항상 화가 잔뜩 나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 어머니를 놀라게 한 것은 딸아이가 학교에 결석하는 일이 잦아지고, 때로는 별 이유 없이 3~4일 동안 학교를 빠지는 것이었다. 당연히 성적이 떨어지고 학년을 유급하게 될 정도로 사태가 악화되었다.
너무 놀라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전화로, 또는 직접 찾아와서 나에게 딸아이를 불러서 얘기 좀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이민 초기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웠을 때 얘기를 하면서, 그때 막 감수성이 예민해졌던 타니아가 친구들이 갖고 있는 이런 저런 물건들을 사달라고 졸랐을 때, 한 번도 그 애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며,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아마 그때 받았던 마음의 상처 때문에 지금 저렇게 아이가 대화의 문을 꽉 닫아놓고, 무언의 반항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요즈음에 와서는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겨서 그때 못 사주었던 것을 사줄 수 있는 형편이 되었지만, 지금 와서는 아무 소용없는 과거의 회한으로 남았다고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 입장에서는 아무리 바빠도 타니아를 위해서 시간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학생들에 할애하는 시간의 몇 배를 들여서 타니아와 대화를 트려고 노력을 했다. 시선을 피한 채 무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이를 보면서, 부모의 말을 안 듣는 아이가 나의 말을 들을까 하는 의문을 품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마음 아팠던 일을 생각해 보고는, 효과가 있고 없고를 미리 따질 것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어떤 것이던 상담 도중 내가 꼭 사용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가 학생들의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 꾸준히 노력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노력의 최대의 수혜자는 자기 자신이며, 노력 포기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도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일종의 인생경험에서 나온 충고이다.
두 번째로는 학생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를 결속하고 있는 핏줄의 힘에 호소해 보는 것이다. “얘야, 네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말을 안 듣고 여러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는지 모르겠다만, 너 때문에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해서야 되겠니?”
어머니의 눈에 여러 번 눈물을 흘리게 했던 타니아가 상급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긍정적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씩 결석하던 습관이 줄어들고, 낙제점수 가까이 받던 성적이 눈에 띄게 올라갔다. 무표정, 무응답이었던 태도에도 변화가 생기면서, 내가 먼저 ‘하이’를 하면, ‘하이’라고 대답할 정도가 되었다.
두 말할 필요 없이 누구보다 제일 기뻐한 사람은 타니아 어머니였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시간에 집에 있어서, 제때에 식사도 준비해 주고 꾸준히 대화를 하려고 애썼다고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딸아이의 태도에 변화를 일으킨 것은 자기가 도움을 청할 때마다 딸아이를 불러서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어준 나의 상담 덕분이라고 너무나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온 것이었다.
타니아가 커뮤니티 칼리지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후, UC로 편입한다는 기대를 품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 역시 무척 기뻐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타니아의 ‘성공’이 나의 카운슬링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는, 다음 회에서 왜 많은 아이들이 타니아처럼 화가 나 있으며, 이렇게 화가 나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나의 경험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김순진 <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