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포트와인 밀어내고
셰리주가 영국인 입맛 잡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식민지 건설에 뛰어들었다. 대서양의 여러 섬 중 13세기부터 유럽 항해자의 쟁탈 표적이 되었던 카나리아 제도를 15세기부터 점령한 스페인은 여기에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생산했다. 포르투갈은 15세기부터 마데이라 제도를 점령했지만 와인산업은 16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빛을 보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가진 이 두 제도는 물론 와인산업의 전진기지였지만, 더 중요한 지역은 라틴 아메리카였다. 이들은 라틴 아메리카에 유럽의 포도 품종을 갖고 들어가 와인을 생산했고, 멕시코에서부터 시작된 신대륙의 와인산업은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는 물론 북미대륙까지 퍼져나갔다. 유럽의 신대륙 와인 전파에 있어 가장 큰 공헌을 한 나라를 말하려면 단연 이 두 나라를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포르투갈 포트 와인의 폭발적인 인기는 같은 시기 부흥했던 스페인 와인을 따라잡았고 19세기 초 영국 수입 와인의 반을 차지했다.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었는데, 19세기 들어 유럽 대륙의 3/4을 전쟁으로 장악한 나폴레옹은 유럽과 영국간의 무역에 제재를 가하기 위해 대륙 봉쇄령을 내릴 정도였다.
포르투갈이 대륙 봉쇄령에 동조하지 않자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군은 도루 강 인근의 포르투갈 북부 지방을 침공했다. 하지만 포르투갈 최대 와인 생산지였던 도루의 몰락을 이끈 것은 전쟁보다도 영국인들의 입맛에 생긴 변화였다.
맥주와 증류주가 질적으로 성장했고, 폭음에 대한 피해의 인식과 금주운동은 독한 포트 와인(Port wine)을 밀어내고 가벼운 와인을 선호하게 만든 것이다.
독한 맛을 원하는 이들도 포트 와인이 아닌 스페인의 셰리주(Sherry)를 찾았다. 이렇게 되자 포트 와인의 생산지인 도루는 몰락하고 대신 스페인의 셰리주 생산지인 헤레스가 급부상했다.
스페인에서 생산되는 셰리주의 90%가 영국으로 수출되면서, 대량 생산으로 인해 영세 농민들이 사라지고 대기업의 포도밭 지배가 두드러지면서 헤레스를 중심으로 하는 스페인 와인산업은 점점 비대해져 포도밭은 19세기를 거치며 4배로 증가했다.
우리는 흔히 스페인은 셰리, 포르투갈은 포트 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스페인은 포도 재배면적에 있어 세계 최대를 자랑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전체 와인 생산량에서 셰리가 차지하는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약 7%).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대표 와인이라고 하는 셰리와 포트 모두 주정강화 와인이라는 것에는 와인 무역으로 성장한 두 나라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보다 멀리 떠나는 배에서 보다 오래 맛을 유지하기 위해 브랜디를 섞은 셰리와 포트. 이 두 와인이 실상 생산량은 적으면서도 아직도 우리에게 두 나라의 대표 와인으로 생각되는 것은 바로 무역으로 성장한 그 나라의 와인산업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 비즈니스를 위한 와인 가이드’
(김기재 지음·넥서스 Book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