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포트 와인’ 브랜드 섞어 숙성시켜

2009-08-05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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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가 영국 상인들이 제조
달콤한 맛 강해 큰 인기 끌어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 대서양과 지중해 사이에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의 두 국가는 17세기 와인 무역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영국과 유럽(특히 프랑스)간의 무역마찰 사이에서 발빠르게 움직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와인 산업의 기반을 만들고 기수를 대서양의 식민지를 거쳐 남아메리카로 넓혀 나갔다.

이베리아 반도에 와인 산업이 지속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이곳이 기독교 문화가 아닌 이슬람 문화권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이슬람권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와인이 생산되어 소비되고 있었고 그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한 것은 17세기에 들어온 후 일이다.


17세기 들어 네덜란드는 무려 1만척에 달하는 선단을 거느리며 유럽 전역의 무역을 장악했다. 그들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대량으로 수입한 와인을 북유럽의 여러 항구로 재수출했다. 이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자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외국선박 출입에 무거운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 정책으로 전환했고 그러자 네덜란드인들은 스페인을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했다. 이때 스페인 와인은 중흥기를 맞아 네덜란드와 영국에 대량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영국에서 벌어진 청교도 혁명과 명예 혁명으로 인해 프랑스 와인은 그 수출길이 막혀버렸다. 그러자 영국의 와인 공급처로 포르투갈이 끼어들었고, 30년 종교전쟁으로 알자스와 독일의 포도밭이 황폐화되어 버리자, 영국의 와인시장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숨죽이고 있던 두 나라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이 포르투갈을 선택한 데는 아마도 당시에 등장한 코르크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코르크의 원료가 되는 너도밤나무와 코르크 참나무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의 남유럽에서 재배되었기 때문에 누구든 와인을 담으려면 그들과 무역을 해야 했다.

이 시기, 영국과 포르투갈이 메수엔 조약을 맺은 것은 그저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 아니었다. 메수엔 조약으로 포르투갈 와인은 프랑스 와인의 1/3에 해당하는 관세만 몰면 됐으니까 말이다.

영국 상인들은 도루 강 상류 지방에서 프랑스 레드 와인과 유사한 색깔이 짙고 맛이 묵직한 레드 와인을 발견했지만 문제는 운반이었다. 진동과 온도에 민감한 와인은 선상에서 쉽게 상하거나 본래의 맛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와인에 브랜드를 첨가하는 이미 17세기에도 와인의 산화를 막기 위해 사용했던 제조 방법이 도입되었다.

이 방법으로 탄생한 포트 와인은 알콜 도수가 더 높아졌고, 당분의 발효가 중단되어 더 달콤한 맛을 냈는데 이것이 큰 인기 비결이 되었다. 포트 와인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어서 18세기 초반에는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심지어는 가짜가 나돌기 시작했다.


‘성공 비즈니스를 위한 와인 가이드’ (김기재 지음·넥서스 Book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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