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배우며- 한국인의 자화상

2009-07-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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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문 중 재미있는 얘길 들었다. 결혼은 판단력이 없어서 하고, 이혼은 참을성이 없어서, 그리고 재혼은 기억력이 없어서 한다는 게다.

한국 갈 때마다 느끼지만, 유독 한국인들은 불편한데 참을성이 없고, 가난하던 옛 기억은 깡그리 잊은 듯하다. 곳곳마다 부수고, 새로 짓고, 개선하는데 얼마나 재빠른지 모른다. 그 덕에 지하철 등 공공시설은 더욱 편해졌고, 고급 식당이나 백화점은 만원이고, 전 국토의 숲은 울창하다. 그러나 과연 한국은 건강한 사회일까?

어느 신문에서 현대 한국인들의 삶을 가장 잘 나타내는 건축물이 상가건물이란 글을 읽었다. 고층 아파트 단지마다 서있는 상가건물엔 꼭대기 층에 교회, 바로 밑층에 학원, 그 아래는 식당, 당구장, 편의점, 병원, 지하엔 노래방과 룸살롱까지 빼곡하다. 한 공간 안에 세속과 성스러움의 극과 극이 들어 있는 이런 구조물은 한국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가 흥미롭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삶의 중심이 가족인 반면에 한국은 주변환경 중심이기 때문이란 거다. 한국인들은 회사, 친구, 종교, 교육 등과 관련, 다층적 관계를 동시에 맺고 한시도 이를 떠나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해서 한국인들의 삶에 필요불가결한 종교와 섭생, 교육과 유흥을 한 곳에 모아놓은 ‘짬뽕건물’이 상가이고, 그들은 이를 곁에 끼고 살아간다.

한국 상가들은 법적으로도 근린생활 시설로 분류돼 주거지역에 얼마든지 파고들 수 있게 돼 있다고 한다. 주거지를 상업지구와 철저히 분리해 유흥가의 해독을 막아주는 외국과는 개념이 한참 다르다.

그러나 ‘짬봉상가’보다도 한국의 정말 부끄러운 풍조는 막말의 범람이란 생각이다. 상대방이 내 맘에 안 들면 최소한 예의나 배려 없이 막말들을 예사로 내뱉는다. 인터넷 댓글의 욕설은 물론 TV에서도 리얼리티 쇼라는 이름으로 비속어가 여과 없이 남발되고 있다.

정치는 더 심하다. 국회에서 쇠망치와 전동 톱이 등장하고 막말과 고성이 난무한다. 젊은 전경들을 죽봉으로 찌르고, 곤봉으로 머리를 친다.

미국에선 대통령 개인은 미워해도 대통령직 자체에는 경의를 표한다. 공권력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부시를 미워한 사람들은 많았어도 대통령직의 헌법상 권한을 존중해 주었다. 공무집행 경찰에게의 반항도 중형감이다.

표현과 시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러나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도 인정하는 게 민주주의 정신이 아닌가. 한국인들의 감정에 치우친 성격, 또, 토론과 논리적 비판교육 등 민주시민 훈련이 부족한 데서 막말풍조의 원인을 찾는 전문가들의 말이 일리가 있다.

낮은 출산율, 높은 사교육비 부담, 높은 자살률과 빈곤율, 낮은 행복지수, 높은 자영업 비율, 빠른 고령화 등이 현 한국사회의 특징으로 요약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편을 가르고,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포기해 가는 한국인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갈수록 걱정스럽다.

김희봉
환경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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