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을 꿈꾸는 휴먼드라마
2009-07-11 (토)
올해로 5회 째를 맞이한 세계 문학상은 그 동안 김별아, 박현욱, 백영옥 등 차세대 한국문학을 이끌어갈 역량 있는 작가를 배출하며 젊은 작가의 산실이 되어왔다. 혹 저자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미실>, 손예진 주연의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현재 영화제작중인 <스타일>등은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제정 당시 1억원이라는 파격적인 상금과 더불어 문학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수상작들을 연이어 배출하여 독자와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아왔다.
올해의 수상자 정유정은 전남 함평 출생으로 간호사와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심사직으로 근무한 특이한 경력을 소유한 작가이다. 저자는 2001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 2007년 삼 년에 걸친 구상과 집필 끝에 탄생한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등단 이후 쏟아지는 원고 청탁을 거절하고, 치밀한 자료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내 심장을 쏴라> 집필에만 몰두해 다시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들로부터는 강렬한 주제의식과 탁월한 구성, 스토리를 관통하는 유머와 반전이 빼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 수명은 세상이 두려워 도망쳐버린, 그래서 자신의 세상 안에 갇혀 지내는 폐쇄적 인간이다.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본의 아닌 사고를 일으킨 탓에 “이번에 가면, 죽기 전엔 못 나온다”는 아버지의 선고와 함께 수리 희망병원에 강제 입원하게 된다. 그리고 인연인지 악연인지 같은 날 입원하게 된 승민에게 ‘휩쓸리게’ 되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나날을 겪게 된다. 스물다섯 동갑내기인 수명과 승민. 하지만 그들은 극과 극이었다. 안으로 도망치고만 싶은 수명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승민과 얽히면서 수명은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된다.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원에 갇힌 두 남자의 탈출기를 그린 감동적인 휴먼드라마이다. 거듭 탈출을 꿈꾸고 또 시도하지만 늘 그 자리에 머무는 일상에 대한 은유처럼 소설은 진지한 의문을 가슴에 품게 만든다. 폭넓은 취재를 바탕으로 한 치밀한 얼개, 한 호흡에 읽히는 문장, 간간이 배치된 블랙유머 등도 인상적이다.
이형열(알라딘 서점 대표)
www.aladdin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