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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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 심사대의 코리안

2009-06-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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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크리스마스에 고국에 가서 지내다 지난 4월 말 워싱턴 인근 공항으로 입국했다. 입국 심사대 앞에서 줄을 서서 보니 출입국 관리직원 중 50~60대로 보이는 한인이 있어 내심 그 사람에게 입국 절차를 거치고 싶었다. 잠시 후 그에게로 배정을 받아 자주 받는 질문은 피하게 되겠구나 싶어 반가웠는데 그게 아니었다.

입국 심사대 직원의 명찰에 쓰인 이름은 ‘KIM’, 한국인에게 가장 많은 성씨이자 내 이름 역시 ‘Kim’이다. 생김새도 장년에 접어든 한인이었다.

“안녕하세요” 하며 여권을 내밀자 그는 아무 대꾸도 없이 유창한 영어로 한국에 무슨 일로 갔느냐, 몇 개월 만에 오느냐 하며 여권을 훑어보더니 당신은 영주권을 가지고 이곳에서 살지 왜 이렇게 많이 들락날락 거리냐, 미국에 살 필요가 없는 것 같다는 등 20여분간을 괴롭혔다. 그러더니 컴퓨터에 뭔가를 열심히 적어 넣고 세관 신고서에 커다란 원을 그려놓고 통과시켜 주었다.


이어 세관 검색대에 가서 신고서를 보이니 다른 라인으로 가라고 했다. 그 곳으로 가니 다음 세관원이 똑같은 질문을 속사포처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영어가 서투르니 통역이 필요하다고 요청해서 30분 후 항공사 여직원이 와서 질의응답을 한 결과 “당신은 출입국이 잦아 영주권이 필요 없는 것 같으니 반납하거나 자기가 취소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여기서 사업을 했고, 자녀가 여기에서 살고, 매년 세금보고 하고, 현재 무역업을 하기 때문에 자주 해외에 가는데 왜 취소가 되느냐고 항의를 하려니 통역하는 한인 직원이 “그냥 필요하다고만 하라. 이미 앞 검사관이 무슨 내용인지 기록해 놓아서 그것을 보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하며 “여기에서 살 것”이라고 통역을 해 주어서 겨우 통과가 되었다.

어떻게 같은 한인이 불법도 아닌 것을 가지고 문제를 만들어 동족을 괴롭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변호사와 상담하고 영주권 반납 여부를 고민하다 다음 출입국 때에는 재입국 사증을 만들어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다른 분이 또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 분은 작은 아들이 콜롬비아 출신 아내를 맞아 미국과 콜롬비아를 오가며 활발한 사업을 하고 있는 중견 사업가이다. 그의 며느리가 휴가를 갔다 덜레스 공항으로 들어오던 중 입국 심사대에서 3시간 동안 붙잡혀 온갖 조사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 며느리가 “담당직원이 코리안 미스터 김이다”며 불평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 분은 며느리에게 “그 사람은 이미 코리안이 아닌 미국사람이고 미국 공무원이다. 코리안을 욕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며느리는 ‘나쁜 코리안이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더라고 했다.

그 직원은 필시 미국 공무원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공항을 통해 매일 입국하는 수많은 영주권자와 방문객에게 코리안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참작했으면 좋겠다.

김남철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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