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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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가정회복에 관한 단상

2009-05-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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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 <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부실장. 임상심리치료사>

해마다 5월은 가정의 달로 여겨진다. 자녀와 부모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가정의 소중한 가치를 상기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싱그러운 5월이 가정의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우리들에게 몸과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가정이 늘 5월의 봄기운처럼 따뜻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핵가족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정은 가장 기본적이면서 소중한 사회적 단위이다. 기본적인 의식주는 물론 정서적인 안정과 안식을 제공한다. 외부와 타인으로부터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울타리이다. 가정이 다른 사회적 단위와 구별되는 점은 조건적이거나 계산적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성공과 성과의 법칙이 가정에서 만큼은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잘하든 못하든 내 자식이고 내 부모이기 때문이다. 실패자를 사회는 내 쳐도 가정은 품어 안는다. 그것이 가정이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한 것은 가정이 너무나 쉽게 미움과 다툼의 공간으로 변모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마치 사랑과 미움은 같은 어원에서 출발한 듯하다. 가장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대상들이 서로에게 미움의 깊은 상처를 남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급기야는 싸움과 미움의 단계를 넘어서서 무관심하며 서로 포기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정들이 의외로 많다.
사랑의 반의어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다. 미움의 단계에서는 서로에게 관심과 기대를 품어보지만 무관심의 관계에서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남남처럼 부대끼지 않고 살아간다. 양보와 관용과는 거리가 멀다. 무관심은 분노와 허탈 속에 자신을 보호하려는 최후의 방어기제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아가 큰 고통과 상처에 견딜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미움이든 무관심이든 가정을 좀 먹는 해악을 예방하는 것이 상책이다. 더 큰 절망에 빠지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노력과 희생이 요구되는 일이다. 가정 먼저 노력해야 할 부분은 대화이다. 대화는 관계 속에서 몸속의 피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피가 몸속 구석구석을 흘러가야 생명이 유지되듯이 대화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대화가 끊어진다는 것은 관계에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과 매한가지이다. 우리는 대화를 훈계나 지시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선인들은 대화를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정의내린다. 내 주장을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들어주는 것이 대화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양보와 인내의 희생이 수반되어야 한다. 양보는 상대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이 이익받기를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다. 인내는 알면서도 너그러이 참아주는 것을 말한다. 가정이 미움과 무관심의 단계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 꼭 필요한 처방약이다. 인격과 성품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노력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덕목이다. 미움은 욕심에서 근원하는 것이고, 무관심은 인내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가정은 인격과 성품의 시험장과도 같다. 가정에서 욕심 부리고 이기적이고 참지 못하는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성인으로 인정받을리 만무하다. 또한 실패하고 상처받은 가족에게는 손을 잡아주고 감싸 안아주어야 한다. 가족은 성공의 전시장이 아니다. 오히려 야전병원과도 같다. 밖에 나가 상처받은 가족들이 몸과 마음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곳이다.

우리 모두가 5월, 가정의 달에 가장 소중한 가정의 가치를 상기하고 회복하는 한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정이 사랑과 돌봄이 넘쳐흐르는 천국이 될 지 다툼과 미움이 난무하는 지옥이 될 지는 우리들의 선택과 실천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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