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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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치유효과

2009-04-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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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거나 외로울 때 혹은 힘든 일로 괴로울 때 음식은 따듯한 마음의 위로가 되어준다. 스트레스 쌓이면 폭식을 한다는 사람들의 말처럼 음식은 사람에게 마음의 답답함과 우울함을 치유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화 ‘라타듀이’에서 묘사한 것처럼 맛있는 음식은 사람의 감성을 깨우고 동심을 일으키며 지친 삶에 정신적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내게도 음식은 항상 좋은 마음의 친구이자 위로자가 되어주었다. 처음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느꼈던 한국에 대한 향수를 된장국이 달래주었다. 낯선 미국에 빨리 적응하게 된 것도 이곳에서 맛있고 다양한 음식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달 이사하면서 은행에서 보증금을 인출했는데, 바로 그날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았다. 경기도 좋지 않은 요즘 부모님의 도움으로 근근이 유학생활을 꾸려가는 처지라 소매치기 당한 돈지갑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었고, 지갑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었다.


복잡한 마음과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허덕이다가 늦은 밤 지갑을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 쯤, 정신을 수습해 내가 처음 한 일은 요리였다. 유학생활의 고독감과 머리 속을 짓누르고 있던 진로에 대한 불안감에 이런 저런 일들로 복받친 감정이 가미되어 오랜만에 울음보를 터뜨리면서도 허기진 배의 쓰라림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먼저 배부르게 먹고 기운 차려보자는 생각이었다.

언뜻 생각난 요리는 따듯하고 맑은 콩나물국이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요리기에 인터넷에 레시피를 찾으면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으로 잠깐 동안이나마 내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먹던 엄마의 진한 콩나물국 내음을 떠올리며 소설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의 주인공 리타라도 된 듯이 나를 짓누르는 모든 우울과 스트레스를 음식 속에서 ‘맛있게’ 조리했다.

신기하게도 스트레스 받을 때와 우울할 때, 화가 날 때 상황에 따라 먹고 싶어지는 음식의 기호가 달라진다. 우리의 감성 또한 음식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같은 스트레스라도 화가 나서 시작된 것엔 보통 매운 음식이 끌린다. 우울할 때는 초콜릿 같이 달콤한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숫한 고민으로 인해 신경성 두통이 온다면 탄수화물이 풍부한 케이크나 고구마가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음식은 상황에 따라 이렇게 효과적인 약이 되어준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 보다 잠깐의 위안을 얻으려 음식에 집착하다간 ‘폭식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고, 해결책을 찾지 못한 문제들은 번민과 우울을 증식해 마음을 더욱 병들게 할 뿐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할리웃 배우들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최근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가정불화로 구설수에 오르면서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폭식을 해댔고, 결국 비만으로 불려 질만큼 살이 쪘으며 정신적인 문제로 치료까지 받았다.

음식은 잠시 현실의 어려움을 잊게 해주는 마음의 도피처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근원적으로 치료해주지는 못한다. 술이나 담배처럼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음식이 독이 되느냐 약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균형’과 ‘절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음식의 맛은 식자재들의 조화와 균형에서 나오고, 스트레스는 절제를 잃은 감정과 형평성을 상실한 마음에서 우러난다. 그렇다면 조화와 절제, 균형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것이 음식 치유법의 목표가 아닐까? 맛있는 음식으로 마음을 다스려가며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박희정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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