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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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원’과 선우경식 박사

2009-04-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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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8일은 부귀와 명예를 뒤로 하고 결혼도 미룬 채 빈민의료에 평생을 바치신 고 선우경식 박사의 1주기 되는 날이다. 생전에 고인을 뵌 적은 없다. 작년 이맘때 신문에 난 작은 기사와 우연히 접하게 된 한편의 시사프로를 통해 그분의 인격과 업적을 알게 되어 마음에 품어 온 지 1년이 되었다.

“진료비를 한 푼도 낼 수 없는 이들이 귀한 보물임을 발견한 것도 이 진료실이며 그런 이유 때문에 지난 세월 진료실을 떠날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환자들은 내게는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의사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환자야말로 진정 의사가 필요한 환자가 아닌가.” 2003년 선우경식 박사가 쓴 글이다. 그의 인생을 잘 보여주는 글 이라고 생각한다.


고 선우경식 박사는 1945년 평양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서울고와 가톨릭 의대를 졸업했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귀국해 모교에서 교수로 있다가 1987년부터 신림동 시장의 한구석에서 빈민의료를 시작했다.

1996년에 건물 재개발로 문을 닫고 이듬해 5월부터 영등포 역사 근처 쪽방촌에서 ‘요셉의원’ 간판을 다시 달고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다. 그가 타계하기까지 그의 병원을 다녀간 환자가 무려 43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요셉의원’은 협력의사 및 간호사를 포함한 200여명의 의료진의 참여와 500여 자원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의 도움에 100% 의지해 운영되는 병원이다. 한방 의료까지 갖춘 ‘준 종합병원’ 수준이지만 수술과 입원은 불가능 하다. 특히 저녁 7시부터 바빠지는 병원이다. 이유는 대부분의 의료진이 생업을 마치고 와서 봉사하기 때문이다.

오직 환자를 살려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던 그는 때로는 염치불구하고 동창들이 운영하는 병원에 죽어가는 환자를 떠맡기기도 하고 연고가 없는 대형병원에 찾아가 환자와 함께 밤을 새우며 치료해 달라고 매달리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치료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평소의 신념이 그대로 행동으로 나타나곤 했다.

이런 그가 진정으로 환자들을 위해 치료하고 싶었던 것은 몸의 병보다도 마음의 병이었다. 그들의 가난한 마음을 알고 보듬어 주는 의사였기에 치료의 효과도 높았다고 한다. 병원 옥상에 마련한 ‘알콜의존증 환자 모임’도 직접 챙겼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술에 의지해 살다보니 소란과 고성이 끊이지 않는 병원이다. 하지만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은 묵묵히 현장을 지키며 헌신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와 존경을 보내고 싶다.
노숙자들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하면서 진정한 존중의 의미를 보여준 생전의 선우박사에게서 예수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를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황 근/육군 학사장교 남가주동문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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