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애를 넘어선 사랑

2009-04-1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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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과 가깝게 지내다 보니 자연히 그들의 아픔과 외로움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근처에 사는 B형제는 요즈음 많이 우울해 하는데 완전 시각장애에다 신장 기능도 30%로 떨어지고, 당뇨 및 각종 합병증에 이혼까지 당하고, 자녀도 찾아주지 않는 육신적·정신적 아픔을 지녔다. 이 형제를 볼 때마다 나의 많은 염려와 불만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 새삼 깨닫곤 한다. 통계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약 10% 정도가 장애를 가졌는데, 나에게도 장애를 가진 가족들이 있다.

한 나라의 성숙도는 장애인·노약자 등 연약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배려로 측정된다고 흔히 말하는데, 다른 나라보다 이 면에서 앞선 미국도 1990년이 되어서야 장애인 차별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 통과에 가장 힘쓴 분이 펜실베니아 주지사와 법무장관을 지낸 딕 손버그인데 이 분은 교통사고로 본 부인이 죽고 자식이 장애를 입는 슬픔을 당했다.
미국 장애인협회 회장으로 있던 두 번째 부인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교회 예배에 정상 자녀가 불참하면 안부를 묻는 교인들이 장애를 입은 아이가 예배에 빠질 때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실에 마음이 아파 이것이 직접 동기가 되어 장애인 복지를 위한 법안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했다.
특히 나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은 “장애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단지 불편한 따름이다”라는 그녀의 말이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 중의 하나가 ‘부끄러움’이라고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말하는데, 장애를 부끄럽게 여겨 숨기려고만 하는 분들은 이 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장애는 일생동안 더불어 껴안고 살아야 하는 고통임에는 틀림없다. 심리학자이며 정신의학 전문의 대니얼 고틀립은 결혼 10주년 기념일에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되고, 더구나 손자 샘이 자폐증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픔을 겪는다.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분노와 배신감, 좌절과 절망에서 다시 삶의 의미와 소망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집중했을 때 가능했다고 고백한다. 자기를 찾는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전문적 상담으로 도움을 주었을 때, 자기의 문제가 그렇게 비관적인지조차도 잊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 지역에 살고 있는 니콜스씨 부부는 이러한 모습을 삶으로 증거하고 있다. 부부가 모두 완전 시각장애인인 이들은 한국에서 네 명의 시각장애인 자녀들을 아주 어릴 때 입양해 훌륭히 키웠다. 큰아들은 개안수술로 시력회복 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수술로 약간의 시력을 회복한 둘째 아들은 영화제작사의 음향효과 담당을 맡고 있다.

첫딸 앨런은 전혀 볼 수 없는데 결혼하여 아들을 키우며 컴퓨터 공부를 하고 있으며, 막내 사라는 시각장애에 심한 자폐증까지 있어 주중에는 복지 홈에 있고, 주말에만 집에 온다. 이들의 자식 사랑, 특히 가장 다루기 힘든 막내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다.

수학 석사학위 소지자인 니콜스씨는 사회보장국에서 만 42년을 근무하고 최근 은퇴했는데, 은퇴 후에 주중 생활이 적적하여 주말에 오는 사라를 더욱 기다리게 된다고 말한다.

본인들도 앞을 볼 수 없는 장애인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들은 “사랑은 성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조건 없는 사랑이야말로 참 사랑이다”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앞서 언급한 대니얼의 고백처럼 이러한 조건 없는 사랑만이 자기의 장애를 뛰어넘게 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아픔에 동참하게 하여 삶의 의미와 기쁨과 소망을 회복시켜 주는 참된 원동력이라고 이 두 사람은 희생과 헌신으로 이어진 그 아름다운 삶을 통해 온 몸으로 크게 외치고 있다.

박찬효/ FDA 약품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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