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한의 모험적 군사정책의 속셈

2009-04-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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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군사 목적의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북한이 발사한 장거리 로켓은 탑재된 것이 무엇이든 간에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이미 1998년에도 북한은 광명성 1호라고 우겼지만 광명성 1호를 통해 우주산업을 발전시킨 흔적이 없다.

오히려 북한은 스스로 미국과 장거리 미사일 협상을 했고, 일본 고이즈미 수상과 김정일의 평양회담에서 장거리 미사일 모라토리엄을 논의했다. 북한 스스로가 이미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했지만 장거리 미사일로 인정하고 전략협상을 했던 것이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는 북한의 모험적 군사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장거리 로켓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한국사회 일부에서 장거리 로켓은 전장 종심이 600킬로미터 안팎인 한국에 사용하지 않고 미국, 일본 등 제3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한다.

한심한 주장이다. 장거리 로켓은 바로 한국 안보를 정조준하고 있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에 대비하여 한국 정부는 연합 방위태세를 갖추고 있다. 국군과 주한미군, 그리고 한반도 밖에 있는 미군을 증원시켜 조기에 전쟁을 종결하려는 작전계획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은 바로 미국 증원군의 한국 파견을 막기 위한 무기로 사용될 것이다. 핵폭탄 등 대량살상 무기를 장착한 장거리 미사일로 미국 여론을 협박하여 한국에 추가로 군대를 보내는 결정을 무산시키려는 군사적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한반도에 전쟁을 도발할 경우 미국 증원군을 한국에 오지 못하게 하면서 핵무기 등 대량 살상무기로 한국을 협박하여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다는 오판을 여전히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는 데는 군사정책뿐만 아니라 모험적 방법으로 체제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묻어 있다. 북한 체제는 현재 심각한 내부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08년 후반기에 김정일 건강이 크게 악화된 것은 더 이상 국제적 비밀도 아니며 상당수 북한 내부 권력 핵심층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주민들은 왜 2008년 8월에 실시 예정이었던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2009년 3월에 실시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도자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준비된 후계자가 없는 북한 체제의 권력 장치 내부는 북한식 군력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클린턴 미 국무부 장관이 서울을 방문하면서 언급한 후계체제 수립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북한 체제의 불안정도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만성적인 경제난 속에서 불가피하게 시장을 통해 생필품을 해결해야 하는 북한 주민은 노동당과 체제에 대한 신뢰가 이전 같지 않다. 극소수의 한국의 민간단체가 뿌리는 1달러에도 목을 매는 북한 주민의 모습 속에서 북한 체제의 허약성이 드러나고 있다. 북한 체제는 장거리 로켓 발사를 통해 북한 체제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치적 믿음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겁주기에 타협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를 바로 잡으려 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북한의 위협을 달래는 대신 차분하게 대처함으로써 대북 레버리지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면서도 ‘대화복원’을 통해 남북관계를 바로 잡으려는 한국의 대북정책 기조는 현 시점에서 가장 훌륭한 전략적 선택이며, 향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지속 유지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라는 모험주의를 제대로 직시하면 한국 정부의 포지션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가 높아질 것으로 본다. 북한은 한국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 유화정책을 실시하는 기간에도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고, 핵실험을 강행했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에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는 억지논리가 더 이상 유통되어서는 안 된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 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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