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겨우 미국 구경 한번

2009-03-3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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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조카가 많다. 하지만 모두 다 한국에 있다. 모두들 한국에서 잘하고 즐겁게 살고 있으니 뉴스 속에서나 듣는 미국이 그저 그런가 보다. 조카들이 어릴 때 유학으로 일찍 한국을 떠난 나는 한번도 제대로 고모노릇 조차 해보지 못해 늘 안타까워하곤 했다.

교직에 몸담고 있으니 늘 조카들 나이의 어린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또 내가 겪은 유학시절을 생각해 주변의 유학생들을 이렇게 저렇게 돕다보니 밖에서만 잘하며 친조카들에게는 살갑게 대한 적도 별로 없어 미안한 마음까지 들곤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미안한 마음과 또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높은 이상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조카들에게 정성껏 미국여행을 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해마다 여름이면 늘 자동차로 직접 서부관광 여행을 시켜주다 보니 이젠 나도 프로급 여행가이드가 다 되어간다. 거기에 고등학교를 막 마친 조카들에게 운전학교에 등록시켜 기본 교습을 받게 하고 자동차 면허를 딸 정도로 편안히 운전할 수 있도록 내가 목숨을 걸고 거리주행을 나서곤 했다.

누구에게나 처음 운전을 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고 기쁜 일이기에 생애 처음으로 운전하는 경험을 미국에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 즐거움과 인상에 남는 기억을 주려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고 나중에 스스로 미국에 공부를 하러 오더라도 쉽게 적응을 하도록 돕기 위한 실질적인 배려가 두 번째 목표이다.

여러 조카들이 미국여행을 하고 간 후 지난 여름엔 내가 한국을 방문해 한 오빠 집에 묵었다. 그 집 아이들 세 명이 모두 미국을 와 같은 경험을 하고 갔다. 나의 마음과 노고에 감사하고자 오빠는 좀 오버를 해서 고모에게 감사하라고 아이들에게 강조를 하는 것이었다.

그중에 올케의 마음까지 상하게 한 말은 바로 고모가 “너희를 키웠다”는 말이었다. 그러자 조카아이가 우리를 키운 것은 엄마지 왜 고모냐며 고모가 “겨우 미국 구경 한 번 시켜준 것”을 가지고 키웠다고 하느냐고 반박을 하는 것이었다. 난 적당한 답이 없이 옆에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언젠가 운전 중 라디오에서 인터뷰를 하던 워싱턴주 상원의원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호범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분은 한국은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나라요 나에게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준 미국은 날 키워준 아버지의 나라라고 말을 하며 나에게 감명을 주었었다. 맞다 바로 부모는 우리를 낳아주신 분들이고 우리를 훌륭한 사회의 일원으로 될 수 있게 도와주시는 다른 분들을 우리는 키워준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린 그렇게 키워줄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강조해 주고 싶다.

자녀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학업과 성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아이들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만나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회성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자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장애학생들에게 부모가 가르칠 수 없는 기본 기능과 기술을 가르쳐 줄 좋은 선생님도 필요하고 실제 일하는 상황에서 한 가지씩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지지자(mentor)가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다.

요즘 부쩍 만나는 사람들의 연령층이 고등학교 졸업생에서 대학 졸업생의 자녀를 둔 분들이라(아! 내 나이가 이 연령층이란 사실을 잊고 있었나?) 더욱 더 멘터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저 부모와 학교의 친구들과만 인간관계를 맺고 사는 아이들에 비해 사회에서 선배며 그들의 롤 모델이 되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가지고 사는 아이들이 더 성숙되고 삶의 목표의식이 뚜렷하며 매사에 적극적인 것을 보면 분명 낳은 부모님도 중요하지만 우리를 키워줄 사람들의 역할도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자녀들이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김효선 교수<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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