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애쉬캔 아트 스튜디오 원장)
“그림 그리면 평생 배고프다.”
40대를 향하고 있는 저의 부모님 세대가 갖고 있는 소위 ‘그림쟁이’ 들에 대한 선입견의 대표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표현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편견은 바뀌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수한 유명 디자이너, 화가, 건축가 등의 삶의 모습이 다양한 매스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적 입지가 많이 향상되었고 더욱이 청소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무너져 순수 예술작품의 특징을 보이는 패션 디자인이나, 광고 디자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반대로 디자인적인 면이 돋보이는 그림들이 미술 경매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전에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현재는 디자인 회사에 취직을 한다거나 직접 경영을 도맡아 높은 연봉으로 시장의 판도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움직임의 여파로 매년 그림을 그려 미래의 꿈을 예술가나 디자이너로 키우기 위해 학원으로 찾아오는 학생들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예술가의 꿈을 가진 학생들에 대한 부모님들의 열성적인 지원입니다. 그림을 처음 배우고자 하는 자녀에게 실력 있는 지도 선생님들을 찾고 그에 맞는 학원 환경을 찾아 인터넷과 신문 등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은 학생보다 부모님의 몫으로 여겨지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연유로 예술 분야에서의 폭 넓은 직업을 소개해 드리고자 시작한 이번 연재의 그 첫 번째로 ‘패션 디자이너’를 꼽았습니다.
패션 디자이너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선망의 직종이고 매력적인 직업 중의 하나입니다. 또한 옷을 구매하는 다양한 소비자들 개개인의 개성이 중요시되고 있는 까닭에 패션업계도 점차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예술학도들의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의류 메이커들이 기업화된 지 이미 오래고, 기성복의 미학적 측면이 강조되자 옷의 소재, 형태, 색상 등을 미적으로 구성하는 디자이너의 역할과 비중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을 다수 배출한 파슨스 대학의 패션학과에서도 순수 미술 개념의 창의적인 표현을 가장 중요시하고 대학 새내기들에게 이에 대한 강도 높은 트레이닝 수업을 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패션 디자이너란 옷의 소재를 다루는 텍스타일, 컬러리스트, 스타일리스트와 패션의 흐름을 파악, 상품화에 어드바이스를 해주는 패션 코디네이터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디자이너는 모든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소비자의 생활 밑바닥까지 조사하고 알아야만 의류의 디자인을 상품화에까지 연결시킬 수 있으므로 머리보다는 발로 뛰는 성실성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미적 감각과 센스가 요구됩니다. 또한 패션 디자이너는 색상, 옷감, 스타일 등을 모두 감안하여 시대유행에 맞는 새로운 스타일의 패션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옷의 제작공법, 원단의 선택, 단가계산 등의 옷의 전 생산과정
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피상적으로 동경하는 그들의 직업이 화려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짐작이 가시죠?
한 예로, 뉴욕 패션계에서 무서운 신인으로 떠오르고 있는 재미교포 디자이너 두리 정씨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불과 몇 해 전,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발표한 ‘2006년 패션부문 유망주’로 소개됐던 그녀는 ‘CFDA(미국패션협회) 패션 어워드’ 시상식에서 신인 여성복 디자이너 상을 받으면서 다시 한 번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미국패션협회가 수여하는 CFDA 패션 어워드는 패션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권위 있는 상입니다. 4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온 두리 정은 파슨스 디자인 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서 예술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파슨스 디자인 학교를 졸업한 후 의류회사 바나나 리퍼블릭에 잠시 몸담았던 그는 1996년부터 미국 디자이너계의 거물 제프리 빈 밑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6년 간 제프리 빈 문하에서 기반을 닦은 후, 뉴저지에 있는 부모님의 세탁소 지하실에 첫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두리(Doo.ri)’ 라는 브랜드로 독립했습니다.
4년 간의 지하실 생활을 끝내고 지금은 뉴욕에 스튜디오를 갖고 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가장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속 성장의 비결을 묻자 그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내가 하는 일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평범한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제2, 제3의 두리 정 탄생을 위해서는 그의 부모님처럼 아낌없이 후원해주시는 부모님이 계셔야 가능한 일 인 것 같습니다. 한국의 미술 대학 입시와는 정반대로 학생 개개인의 독특한 발상과 개성을 존중하는 미국 내 미술 대학이 요구하는 것은 얼마만큼 자신의 독창성 강한 아이디어를 설득력 있게 잘 표현하고 있느냐를 보는 포트폴리오입니다.
현재 자녀가 지금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있다면, 자녀의 작품들을 함께 보면서 그 내용과 의미를 짐작해 보기도 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이 자녀에게 큰 자신감과 부모님과의 유대감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