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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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불황 속의 아이들

2009-03-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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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부실장, 임상심리치료사)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사태로 시작된 경제위기의 한파가 우리들의 삶 속에 몰아닥치고 있다. 대공황 이후 최대라고 하는 이번 경제위기는 은행파산, 신용경색, 주가폭락, 주택차압, 소비지출 감소에 따른 경기급랭을 초래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인 직장과 주택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스몰 비즈니스에 많이 종사하는 한인들은 경제 한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경제위기는 실물경제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정신건강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한국에서도 1990년 대 말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가정불화, 이혼, 우울증, 자살 등이 급격히 늘어난 선례가 있다. 최근에는 한인사회에 사업체 렌트를 내지 못해 고민하던 한인 가장이 어린 딸을 혼자 남겨두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부부문제로 갈등을 겪던 한 한인 남편이 아내를 먼저 살해한 후 자살하기도 했다. 필자의 클리닉에도 자살을 시도했다가 다행히 목숨을 건진 분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이 불행한 일들은 하나같이 이번 경제위기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
다.


경제 불황은 가정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업실패, 파산, 실직은 가정불화와 가족해체를 초래하기도 한다. 실직한 가장은 심한 스트레스와 심적 고통으로 가족들에게 짜증이나 화를 내는 횟수가 빈번해 진다. 돈 문제로 남편과 아내가 다투는 일이 잦아진다. 아무리 찾아봐도 다른 묘수가 없어 보인다. 아이들과 함께 살 길이 막막하고 앞에 보이는 것 짙은 어둠과 안개뿐이다. 그 속에서 가족이 병들어 신음한다. 어른들이 경제위기로 신음하고 있을 때 아이들도 심리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느낀다. 부모들이 돈 문제로 걱정하거나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았을 때 아이들은 심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직 성장단계에 머물러 있는 아이들은 환경적 변화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어린 아이들은 언어와 인지발달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에 감정과 생각을 인식하고 해결하며 언어로 표출하지 못한다. 그래서 위축된 행동이나 공격적 행동의 형태로 나타날 수가 있다. 가정의 가장 큰 역할은 가족구성원들에게 물리적,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가정은 어머니의 품과 같이 실직하거나 파산 위기에 놓여있는 가장과 고된 노동으로 하루 종일 고생한 우리 어머니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쉼의 장이 되어져야 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일수록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힘과 안식처가 되어주어야 한다. 가정의 역할은 위기와 시련의 시기에 더 큰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경제 불황이 가정불화와 가족해체를 부추기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꽃피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심리적으로 취약한 아이들에게 부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부모가 힘들 때 일수록 서로 위로하고 지지할 때 아이들은 안정감을 느낀다. 가정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자라난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도 안정감 있게 행동한다. 또한 부모는 아이들의 역할모델이다. 부모가 고난과 시련을 인내하고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문제 해결 방법을 배워나간다. 장차 다가올 인생 속에 비슷한 어려움이 생겨도 절망하고 포기하지 않는 자세와 방법을 습득한다. 그리고 용기있게 그 어려움을 해결하려 들 것이다.

현재의 경제 위기는 그 끝이 언제가 될지 모를 정도로 그 골이 깊다.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는 가정과 아이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가정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 주어야 한다. 특히, 취약한 아이들이 불황의 여파로부터 벗어나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고난을 이겨나가는 방법을 배워나갈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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