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 함영욱

2009-02-20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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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영웅

어수선한 세상 가운데 영웅이 나온다는 옛말이 있다. 경기불황에 허덕이는 지금의 한국과 미국사회 또한 ‘亂世之 英雄’의 예외일 수는 없다.
난세에 나타난 영웅은 사회 문제의 직접적 해결사라기 보다는 민심을 모으는 구심체 역할로서 의미를 더한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미국사회가 새로이 받아들인 영웅은 단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미국민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그에게 깊어진 이념의 골을 따라 갈린 국론을 추스리고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비전 제시를 기대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어둡고 궁핍한 시대에 사는 민초들의 희망과 변화에 대한 갈망이 탄생시킨 영웅인 셈이다.


한국에서도 ‘영웅 갈증’이 각 분야에서 엿보인다. 특히 IT강국을 자처하는 한국에서는 인터넷 경제자문가들을 지칭하는‘경방영웅’등 온라인 상의 영웅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제시하는 것은 처방이 아니라 분석이고, 비전이 아니라 구구한 주석일뿐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는 있으되 희밍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온라인 시대의 재간꾼에 불과하다.

지난 16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이후 한국사회는 그가 남긴 사랑의 메시지 안에서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추기경의 시신이 안치된 명동성당 주변은 전국각지에서 몰려든 조문객들로 연일 붐비고 있다. 내로라하는 권세가들로부터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버거운 빈민자들에 이르기까지 조문객들의 사회적, 경제적 배경도 다양하다.

이처럼 온 국민을 하나로 엮어 놓은 그의 힘은 실천을 통한 사랑이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가슴에 서슴없이 칼을 꽃는 한없이 영악한 세태를 향해 그는 ‘바보’처럼 밑지고 살라고 끊임없이 타일렀다. 머리로만 살려들지 말고 가슴으로 살아가라는 충고였다.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메시지도 ‘사랑하세요’다. 지난 1998년 10월 북가주를 방문했을 당시 김수환 추기경이 오클랜드 성 김대건 천주교회에서 행한 강론의 요지 역시 ‘마음의 벽을 허물고 서로 사랑하라’였다.

불경기로 인한 경제적 결핍으로 살아가기 팍팍한 요즈음이지만 가만히 주위를 살펴보면 북가주 한인사회에서 지금 가장 부족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사랑이다. 추울 때일 수록 따듯한 온기로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야 하는데 눈 앞의 개인적 이익을 쫒아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내치는 대신 품어주고, 보복하는 대신 용서할 것을 가르치는, 김수환 추기경같은 ‘사랑의 영웅’이 아쉽다.

<함영욱 기자> ha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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