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후한 중년신사 ‘카버네 소비뇽’

2009-02-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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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숙성 거치며 깊은 맛 선사
부드러운 멜로, 초보자도 선호

와인을 즐기는 최상의 경지는 와인마다의 개성의 차이를 이해하고 그 다양성과 복합성을 한껏 만끽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양성과 복합성을 만끽한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실제로 그 개성들을 제대로 찾아내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것은 와인의 개성을 결정하는 인자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포도품종에 따라 달라지고, 양조 방법에 따라 달라지며, 생산 연도 즉 빈티지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같은 품종, 같은 빈티지라도 그 와인이 탄생한 생산지와 양조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약 200여가지의 품종으로 와인 양조가 가능하다. 그 중에서도 반드시 구별할 줄 알아야 하는 품종이 있다. 바로 레드와인의 독수리 오형제인 카버네 소비뇽(Caberner Sauvignon). 멜로(Merlor), 피노 누아(Pinor Noir), 쉬라(Syrah/쉬라즈 Shiraz), 산지오베세(Sangiovese)와 화이트 와인의 미녀 삼총사인 샤르도네(Chardonnay),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리슬링(Riesling)이 그것이다.

◆포도품종의 황제, 강한 카리스마의 카버네 소비뇽

많은 비즈니스맨이 바로 카버네 소비뇽과 같은 강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기업을 세웠다. 포도품종의 황제라는 별명답게 카버네 소비뇽은 씩씩하고 중후한 맛을 가지고 있으며, 거친 것 같지만 깊이가 느껴진다. 한마디로 숙성된 카버네 소비뇽은 중후한 중년신사를 보는 듯하다.

그런데 이 깊이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이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 숙성되지 않았을 때는 익지 않은 땡감을 베어 물을 때 혀 안쪽을 바싹 조이는 떫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오래 숙성되면 될수록 이 떫은맛은 실크처럼 부드러운 맛으로 변화하여 그윽하고 깊은 맛을 선사한다.

이 품종은 마치 영화 ‘미션’에 등장하는 로버트 드 니로 같은 인상이다. 아내와 동침한 동생을 죽인 살인자였으나, 그 죄책감에 마치 시지프스처럼 폭포수를 계속 오르내리며 참회하는 모습은, 세월을 참아내고 마침내 거친 속성에서 독특한 카리스마의 부드러움을 갖게 되는 카버네 소비뇽 그 자체이다 연기자로서 세월이 갈수록 완숙해지는 로버트 드 니로의 모습 역시 카버네 소비뇽의 이미지 그대로이다.

불어식으로는 까르베네 소비뇽이라고 발음한다. 이 품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보르도 매독 와인을 만드는 대표 품종이다. 블렌딩의 마술이라고 일컬어지는 보르도 와인은 몇 가지 포도품종을 섞어 맛과 향의 조화를 만드는데, 여기서 카버네 소비뇽은 사람으로 치면 척추 같은 역할을 수행해 맛의 구조(structure), 즉 골격을 형성한다. 매독 와인 특유의 강하고 텁텁한 맛은 바로 이 카버네 소비뇽의 비율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부드러운 멜로


시대가 변하면서 과거 같은 강한 카리스마보다는 부드러움이 중요한 비즈니스맨의 덕목이 되었다. 그런 시대를 반영하듯 요즘에는 이 품종의 와인을 초심자들은 물론 와인 애호가들도 즐겨 마신다.

멜로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다. 터프함이나 섹시함보다는 사람 몸의 살처럼, 넉넉함과 여유로움 그리고 부드러움으로 대변된다. 이 품종은 보르도 쌩떼밀리옹 지역과 뽀므롤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는데, 그 유명한 쌩떼밀리옹의 샤또 오종과 뽀므롤의 빼뜨뤼스가 이 품종으로 만들어진다.

이 품종 역시 보르도 지역에서는 카버네 소비뇽과 혼합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과 같은 뉴월드 와인 생산국에서는 단일품종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것은 초보자들이나 부드러운 맛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성공 비즈니스를 위한 와인 가이드’(김기재 지음·넥서스 Book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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