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화와 삶- ‘모하비 프로젝트’

2009-01-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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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대지와 드넓은 대기, 강렬한 햇살은 캘리포니아에서 살아가는 삶의 은총이다. 사진작가 장사한은 늘 카메라를 메고 자연을 향한다. 그에게 관심을 일으키는 사막, 물, 나무 등의 주제 중엔 시간과 기후에 풍화된 폐허가 자주 등장한다.

그의 집에 들렀을 때 벽에 붙여진 이 사진이 좋아 그림과 바꾸자고 졸랐다. 마음 좋은 그는 선뜻 바꾸어 주었는데 이 사진을 벽에 걸어 놓자 온 집안과 나의 마음에 커다란 대지와 대기가 들어선 것 같다.

오랜 미술 공부를 하며 작업이란 공간 감각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몇 10년을 자연 속으로 여행하며 추구해온 작가의 내면적 공간 감각이 보는 이의 마음을 활짝 열어준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새로운 시각적 영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려하는 그는 때로 사진을 찍으러 사막을 향하는 길에 나의 집에 들러 같이 가겠느냐고 묻는다. 선뜻 따라 나서 사막을 지날 때에 바람과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아무도 없는 대지에서 쓰러져가는 폐허에 부딪치는 햇살의 미묘하고 강렬한 강도를 찍을 때 점처럼 멀리 보이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렇게 늘 혼자 산과 들을 헤매고 다니는 고독한 여행을 일생 하고 있으니 도가 트이겠구나 … 싶었다. 그는 말이 없는 편이고 잘 웃는다. 혼자만 아는 기쁨이 있는 사람처럼 유유자적하다.

커다란 사진이 나의 방에 들어서자 마음도 크게 거침없이 열린다. 사진을 바라볼 때마다 느끼는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내가 늘 책을 읽고 뒹구는 방에 붙여놓았는데 나의 방이 아주 작고 그의 사진은 무척 커서 시선을 들어 바라 볼 때마다 커다랗고 힘찬 세계가 선뜻 다가온다. 하얀 소금밭처럼 쏟아져 내리는 햇살, 멀리 보이는 전선줄이 이루어내는 공간, 전경의 흙과 마른 풀들의 음영. 빛과 어둠의 선명한 조화…

사진을 바라볼 때마다 내가 서 있었던,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의 사막이 기억나고 태양에 달구어 지는 대지에 선 폐허의 역사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문명의 생성과 사멸 … 현대의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벽이 없어졌기에 공간이 더 열려 보이는 건축의 아름다움. 때로는 새로 짓기 시작하는 건축물로 보이기도 한다.

무위(無爲)의 아름다움 … 이 한 장의 사진은 아무 것도 확연히 드러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는 현실적 능력이 별로 없는 나에겐 온갖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싶은 그림, 가고 싶은 곳,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들을 눈 감고 열심히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나면 ‘다 이루었다!’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흡족해 지는데 이 상상은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 나의 소중한 취미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 사진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생긴 상상 중의 하나가 ‘모하비 프로젝트’이다. 사막의 한 가운데에 커다란 이민작가 뮤지엄을 짓는 것이다. 뉴욕의 DIA 뮤지엄 처럼 지붕의 유리창으로 빛이 들어와 전기 사용을 최소화하고 석양이 되면 자연히 빛이 차단된다. 태양열과 지하수를 이용해 자연 친화적이다.

우드스톡 같은 음악 축제가 해마다 열리는 데 모든 종류의 연주자들이 모인다. 할리웃 보울에 몰리는 청소년들이 사막에서 캠핑을 하며 축제에 참여한다. 전 세계의 모든 휴매니테리언 운동이 핵처럼 모이고 퍼져나간다.

달밤이면 춤과 음악의 레이브 파티가 열린다. 젊은 작가들이 마음껏 창의력을 펼칠 수 있는 전시장과 예술 교육현장을 제공한다. 전 세계에서 작가들이 찾아와 몇 달씩 작업할 수 있는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예술과 자연, 과학과 문명이 만나 새로운 문명의 모델이 시작된다 …

친구가 선물한 한 장의 멋진 사진이 영감을 준 ‘모하비 프로젝트’는 매일매일 나의 마음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예술가는 문명의 미래를 감지하고 누군가는 삽을 들고 시작하리라.
한 장의 사진은 끝없이 나에게 새로운 구상과 영감을 주며 행복한 지구인의 삶을 꿈꾸게 한다.

박혜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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