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이미 주니어랭킹 1위...1년전 이민
운동에 타고난 소질 태권도 3단 유권자
미 국가대표로 세계대회 금메달 꿈
라이언 중학교(MS 216) 8학년 김연주양은 미래의 미국 국가대표 사격 선수를 꿈꾸는 당찬 ‘소녀 총잡이’다. 미국에 온 지 불과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뉴욕한인사격협회(회장 최호찬)의 2008년 최우수 신인상에 선정됐다. 피아노나 그림 등의 예술 활동 혹은 수영 같은 운동을 하는 학생들은 쉽게 볼 수 있고 오히려 특기활동 경력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필수 ‘스펙’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미국에서 사격을 하는 한인 학생을 만나는 것은 참 드문 일이다. 그래서 김연주양의 수상 소식을 보도로 접한
사람들 중에는 “사격이라는 것이 워낙 선수층이 없으니까 조그만 돋보여도 상을 받겠지”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연주양은 사격 강국인 대한민국에서도 최상급 주니어 랭킹에 오른 선수였다.
뉴욕사격협회 관계자들이 “이런 재목이 뉴욕 협회에 들어오게 될 줄은 솔직히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이유다.태권도가 3단인 ‘태권소녀’이기도 한 연주양은 원래 운동에는 대단한 소질이 있었다. 사격부가 있던 인천의 안남중학교에 입학한 뒤 선배의 권유로 공기권총을 시작하게 되었고 총을 잡은 지 불과 1년 후인 2007년 포항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에 인천대표로 출전해 단체전과 개인전 금메달을 받으며 주니어 랭킹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어머니 이윤정씨는 “ 연주가 미국에 오게 되자 학교 선생님은 물론 사격 협회 관계자들이 모두 말리면서 정말 아쉬워했다”고 전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행 계획을 세워놓고 영주권까지 획득한 부모가 아니었다면 한국에서 계속 촉망받는 미래의 국가대표로 커나가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연주양은 외딸이다. 당연히 이씨는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시켜봤다. 일단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는 본인이 재미없어 해서 음악은 진작 제쳤고 그림도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다만 태권도는 아주 잘해서 사범까지 시킬 수준을 만들 요량으로 계속 시켰다. 그러다가 사격이라는 예상치 못한 운동을 만나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이씨는 비인기 종목이라고 할 수 있는 사격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지만 “딸애가 좋아하는 일은 무조건 밀어준다”라는
원칙 하나로 격려해줬다. 소질도 있어보였고 성격도 맞는 운동 같았다. 이씨는 딸에 대해 “개인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격이 차분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요. 사격같이 집중력을 요하는 운동을 하기에는 맞는 성격이죠”라고 말했다. 뉴욕에 와서도 가장 먼저 한일이 사격을 할 수 있는 곳을 찾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한국과는 다르게 총이 널려있고 누구나 총질을 할 것 같은 뉴욕에서 5개보로 모두 사격장이 금지되어 있었다. 총을 잡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연주양은 엄마에게 “나 손 떨리게 되면 어떡해?”라며 초조한 모습을 보였고 인터넷으로 한국 동료들의 성적과 랭킹을 확인하기도 했다.
다행히 사격협회 최호찬 회장의 도움으로 이제는 롱아일랜드의 사격장에서 1주일에 2~3차례씩 정기적으로 연습을 할 수 있게 됐다.연주양에게 사격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4년 후에는 정말로 미국의 국가대표가 돼서 세계대회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고 더 나이가 들어서는 코치로 후진을 양 성한다는 다부지고 구체적인 목적을 이미 갖고 있다.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워낙 뚜렷하다 보니 어느 대학 어느 전공을 정해야 하는지 오히려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머니 이씨는 대학과 함께 폴리스 아카데미도 딸의 장래를 위한 선택중 하나로 고려하고 있다. 이미 무술 유단자에 대표급 사격 솜씨를 가진 연주양이라면 훌륭한 경찰 전문가도 충분히 될 수 있을 것이다. 표적이 잘 맞지 않고 집중력이 떨어질 때면 열심히 샌드백을 두들기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연주영의 모습을 그려보면 여성 FBI 요원이 등장하는 영화속의 한 장면이 쉽게 연상되기고 한다. 벌써 십여 년이 지난 일이지만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불과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공기소
총의 여갑순 선수가 첫 금메달을 따던 감격적인 순간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연주양이 그런 감격의 순간을 미국인들과 한인들에게 모두 안겨주는 주인공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박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