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만 목사. 온누리순복음 교회
로고테라피(Logotherapy-의미요법)의 창시자인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내십니까? (How are you?)” 라고 인사하지 않고,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Where are you?) 라고 인사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어디에(where)“란 필라델피아, 뉴욕, 서울과 같은 공간적 장소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삶의 뿌리에 대한 ”정체성(Identity)“을 묻는 말이다.
현대인들이 겪는 위기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이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이다. ”내가 어디서 와서, 무엇을 위하여 이 자리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존재인가?“ 하는 정체성의 질문에 대하여 분명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외로 많다. 사람은 누구나 정체성이 확실해야 삶의 추진력을 가지며, 창조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정체성의 위기가 닥치면 영혼육을 하나로 묶는 통합능력이 흔들리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사는 것이 두려워지는 부정적 삶의 무드를 갖게 된다.
한 인디안 소년이 산속에 들어갔다가 독수리 알 하나가 얻었다. 그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닭장 속에 넣었다. 암탉이 그것을 보고 자기가 낳은 알 인줄 알고 함께 품었고, 얼마 후에 독수리 새끼가 그 안에서 부화 되었다. 병아리와 함께 태어난 독수리 새끼는 자신이 병아리인줄 알았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처럼 풀섶을 뒤지며 벌레를 잡아먹고, 주둥이로 땅속을 뒤집어 지렁이를 잡아먹었다. 그리고 병아리처럼 “삐약, 삐약“ 소리를 지르며 다녔고, 자기에겐 큰 날개가 돋아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아리처럼 종종 걸음을 치면서 돌아다녔다. 정체성의 위기를 만난 것이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어느 날이었다. 엄청나게 크고 장엄한 모습을 한 큰 새가 하늘을 유유히 맴돌고 있었다. 독수리 새끼는 그때까지 그처럼 크고 아름다운 황금색 날개와 흰 머리털을 가진 위대한 새를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과 어미 암탉은 그 장엄한 새를 보자 말자 혼비백산하여 어디론가 도망 가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새끼 독수리는 어쩐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도망가고 싶지도 않았다. 시냇가의 물속에 숨은 친구 오리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모든 새들의 왕자인 독수리다!” 그때서야 새끼 독수리는 위대하고 장엄하게 생긴 그 새가 독수리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나도 저런 새가 되어보았으면-.” 물속에서 머리만 뻐끔 내밀고 있던 오리들이 제각기 한 마디씩 했다. “꿈같은 소리 하지도 말아. 넌 저렇게 위대한 새가 될 수 없어.”
그 일이 있는 후 다시 며칠이 지난 맑은 날이었다. 장엄한 자태의 그 독수리가 다시 나타나 새끼 독수리의 머리 위를 계속 맴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는 그전과 달랐다. 하루 종일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새끼 독수리를 응시하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 독수리가 “나는 너의 아버지다. 네 모습을 자세히 보아라. 너는 병아리가 아니고 나와 같은 독수리다. 그러니 네 날개를 활짝 펴서 하늘 높이 올라오라”고 부르는 듯하였다. 그 순간에 새끼 독수리는 날개에 힘을 잔득 주고 쭉 펴 보았다. 자신의 날개도 하늘 높이 떠 있는 큰 독수리와 같은 황금빛 이었고, 밝은 햇살에 빛나는 자신의 날개가 그렇게 찬란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는 두 다리로 땅을 힘차게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아버지 독수리가 그에게 날아와서 그를 데리고 깊은 숲속으로 날아갔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병아리 같은 독수리가 너무 많다.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모르고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런 사람은 오늘 하늘의 예수님을 만나 정체성을 회복하라. 그 인생이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