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단상- 서랍 속의 용돈

2009-01-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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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어머니임!”

좀 전에 떠난 작은며느리가 전화를 해왔다. 사흘 후 떠나는 한국여행에서 ‘나이스 한 디너를 드시라’고 화장대 위에 용돈을 두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이삼일 전부터 새해 음식준비 하느라 생긴 고단함이 냉장고의 성애제거 단추 누른 듯이 녹아내렸다. 더 나가 유난히도 힘들게 느껴졌던 지난 한해의 피곤함이, 더 멀게는 25년 이민생활의 삭막함이 큰 보람으로 전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큰며느리도 이런 식으로 내게 용돈을 주었었다.

아들들이 청소년 시절 정 많고 걱정 많은 남편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엄마를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그럴 경우 무덤에서라도 튀어나와 혼내줄 거라는 진심 섞인 농담을 했었다.

그때 내가 농담 삼아 한 말이 있었다. “내가 너희에게 용돈 달라기 전에 늘 주어왔듯이 너희도 이다음에 내가 미안하지 않게 부엌 캐비닛 서랍에 용돈을 남겨두고 나중에 전화로 알려 달라”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면 난 꿈을 이룬 것이다. 자식의 원만한 성장과 웬만한 경제상태-그것도 꿈을 이룬 것이지만 그보다 자식에게 이른 농담 섞인 당부 즉 ‘서랍 속의 용돈’ 꿈을 이룬 것이다.

조계란/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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