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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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칼럼/ “의미 있게 산다는 것“

2009-01-03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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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모든 사람들이 신년의 밝은 인사로 바쁘고 분주하다. 여기저기서 새로운 계획과 결심을 발표하는 구호소리가 우렁차고 요란 하게 들려온다. 모두가 다 신년을 의미 있게 살고자 하는 새 마음의 결심과 준비로 바쁘다.

과연 의미 있게 산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그리고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진 고귀한 시간들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가 있을까? 이외로 많은 사람들이 의미 있는 삶은 크고 많은 일 속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큰일을 가지고도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작은 일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의미 있는 삶을 살 수가 있다.

나 한사람으로 인하여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 질수 있다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일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 사람은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가 있다. 인도 캘커타의 성녀 테레사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창한 일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신다. 그는 위대한 사랑으로 아주 사소한 일을 하라고 부르셨다”라고 말했고, 아브라함 링컨은 내가 죽으면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이렇게 말해 주기를 바란다. “당신이 잡초를 뽑고 꽃을 심은 곳은 언제나 꽃이 자랄 만한 곳이더군요” 라고.

아주 오래전에 동대문 건너편의 허허 벌판에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었는데, 매표소 한 구석에서 방망이를 깎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한 노인이 있었다. 시외버스를 기다리던 한 손님이 노인에게 방망이를 하나 빨리 깎아달라고 주문했다. 주문을 받은 노인은 손놀림을 매우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방망이를 깎기 시작했다. 그런데 방망이 윤곽이 다 잡힌 다음부터는 이리 저리 돌려보며 마냥 늑장을 부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의 눈에는 그만하면 다 완성된 것 같았는데 더 손을 대면서 다듬고만 있었다.


버스 출발이 다 되어 초조해진 손님은, 이제 그만하면 되었으니 그냥 내어 달라고 했으나, 노인은 그 말을 들은 채 만 채 계속 다듬고만 있었다. 이제 더 손대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내어달라고 재촉했더니 노인은 버럭 화를 내면서 “밥솥의 밥이 끓을 만큼 끓고 뜸도 들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지금 나는 뜸을 드리고 있는 거야 뜸을.” 손님은 기가 막혔다. “돈 내고 살 사람이 다 되었다고 하는데 왜 자꾸 이러십니까? 참 외고집이시군요. 차 출발 시간이 다 되었다니까요.” 이 잔소릴 들은 노인이 퉁명스럽게 말한다. “정 급하시거든 다른데 가서 사시구려. 난 그렇게 급하게는 못 팔아요.”

주문을 해 놓고 지금까지 기다리던 손님이 그냥 갈 수도 없고 버스 시간도 어차피 어긋난 것 같아 단념하고 “그럼 기다릴 테니 마음대로 깎아보세요”라고 했다. “글쎄 자꾸 보채면 방망이가 거칠어지고 제 모양이 안 나온다니까. 물건이란 정성과 시간을 들여 천천히 제대로 만들어야지 덤벙덤벙 깎아서는 되나?” 노인은 한참동안을 더 다듬고 깎아낸 후에 방망이를 높이 치켜들고 이리저리 돌려 본 다음 내주었다.

손님이 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그때서야 휘어진 허리를 펴며 건너편 동대문 지붕 끝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한없이 존경스럽고 믿음직스러웠다. 삶을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은 평범하고 작은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데 있다는 것을 이 평범한 노인이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태 7:13-14)고 했고, 헨리 소로(Henry Thoreau)는 “비록 좁고 구부러진 길일지라도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면 계속 그 길을 가라”고 했다. 하나님, 2009년 새해가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는 귀한 한 해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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