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만 <온누리순복음 교회>
다사다난 했던 2008년도가 성탄의 캐롤 소리와 함께 아스라이 저물어 간다. 어제까지 겨울답지 않은 비가 장마처럼 쏟아 내리더니 오늘 아침은 완전히 시베리아다. 캐나다에서 치고 내려온 매서운 겨울 북서풍 바람이 내가 살고 있는 필라델피아를 꽁꽁 얼게 만들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이면 여기저기서 한파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홈레스 피풀(homeless people)과 영세민의 탄식 소리가 귀전에 생생하게 들리는듯하다. 이런 즈음에 금년에도 예년처럼 각 교회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의식주 지원 사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수년전 감동 깊게 읽었던 일본 작가 쿠리 료헤이가 쓴 “우동 한 그릇”이라는 단편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이 작품은 몇 년 전 일본 국회에서 읽혀져 국회는 물론 일본 열도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일본 사람들은 섣달 그믐날 가족과 함께 우동을 먹는 관습이 있다. 우동집 ‘북해정’은 그해 섣달 그믐날의 우동을 먹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로 하루 종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제 종업원들도 다 퇴근하고 문 닫을 10시가 되었을 때였다. 남루한 옷을 입은 중년 부인이 초등학생 쯤 되는 두 아들을 데리고 머뭇거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저어, 우동 한 그릇만 시켜도 될까요?” 부인의 등 뒤로 어린 두 아들들이 혹시 거절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안주인은 머리를 꺄우뚱 거렸다. 아이들까지 세 사람인데 우동 한 그릇이라니..... 그러나 순간 이들을 민망하게 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짐짓 명랑한 소리로 주방에 있는 남편을 향하여 소리쳤다. “우동 한 그릇!” 남편이 주방으로 들어 온 아내에게 말했다. “3인분을 넣읍시다.” “그래요.” 안주인은 우동을 다 비우고 나가는 가난한 세 식구를 문 앞까지 따라 나가면서 “우리 집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내년 그믐날에도 꼭 다시 오세요.”라고
따뜻한 말로 전송해 주었다.
다시 한 해가 흘렀고, 그믐날 밤 10시경, 세모자가 들어왔다. 그리
고 똑같이 우동 한 그릇을 시켰고, 이번에도 주인은 세 그릇의 우동을 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 그믐날에 또 찾아와 우동을 먹고 나간 후로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매년 그믐날이 될 때 마다 우동 집 주인은 그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어느덧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나고 다시 그믐날이 되었다. 문 닫는 10시가 다 되었을 무렵에 건장한 청년 두 사람이 곱게 옷
을 차려입은 나이든 아주머니를 데리고 들어왔다. “저어, 우동 3인분을 시킬 수 있을까요?” 안주인은 그 순간 숨이 멈추는 듯 했다. 오래전 세모자가 들어와 우동 한 그릇을 시켜먹던 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의사가 된 맏아들이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우리는 외롭고 가난했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바라보지 않았고, 이 세상에는 우리 가족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북해정 우동 집 아주머니도 우리를 외면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너무나 친절했습니다. 그 친절은 우리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이다음에 우동 집 아주머니처럼 외롭고 힘든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 했습니다.” 외롭고 힘든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며 베푸는 사랑의 말 한 마디와 행동은 이 세상을 얼마나 밝게 만드는지 모른다. 우동 한 그릇의 사랑이 그리운 세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