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밀하게 펼쳐 보이는 삶의 궤적

2008-12-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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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훈의 신작 에세이 ‘바다의 기별’이 새로 나왔다. 이미 ‘자전거 여행’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 등의 산문집이 서점의 한구석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기에 김훈을 소설가라고 하기보다는 수필가라고 하는 게 더 걸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물론 많은 소설가들이 소설과 산문을 번갈아 쓰기도 한다. 하지만 공지영이나 박완서, 혹은 황석영이나 최인호와는 아주 구별되는 김훈만의 스타일, 아마도 그게 좋아서 김훈이라는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내러티브’라는 용어가 있다. 문학에서도 영화에서도 참으로 많이 쓰는 용어인 내러티브는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하는 인과 관계로 엮어진 실제 혹은 허구적인 사건들의 연결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위에 열거한 소위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작품에서 물 흐르는 듯한 내러티브를 구사한다.

하지만 내가 읽는 김훈은 아주 다르다. 물이 흐르기는커녕 문장 하나하나가 바늘처럼 작은 비수처럼 콕콕 찌른다. 처음 읽는 사람은 백미밥을 먹다 현미밥을 먹을 때 느끼는 까끌거림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쉽게 친해지기 힘들다.

하지만 인내를 갖고 읽어나가다 보면 이내 문장 하나하나를 되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문장을 읽어 소화가 되면 그 느낌은 아주 쿨(cool)하다. 그에 글엔 차갑지만 멋들어지는 말의 성찬이 있다. 그의 사상은 차갑되 시니컬하지 않고, 허무주의적이되 퇴폐적이지 않다.

김훈은 이번 산문집을 통해 자신의 문학적 자의식과 문학론, 작가로서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그리고 빈한했던 유년 시절과 시대와 불화했던 아버지, 헌신적이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추억한다. 한 개인으로서,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소설가로서 겪은 삶을 담은 산문집으로 작가 김훈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다.


이형열(알라딘 서점 대표)
www.aladdin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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