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 잔의 차

2008-12-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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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의 차(Three cups of tea)’는 올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다. 험준한 히말라야 북부 파키스탄 발티 지방의 오랜 격언에서 따 온 제목이다.

첫 번째 차를 나눌 땐 당신은 남이다. 그러나 두 번째 차를 나누면 당신은 내 소중한 손님이 된다. 세 번째 차를 함께 마실 때면 당신과는 혈육처럼 가깝다

고립되고 배타적인 발티 족이지만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가르쳐온 잠언이다. 어쩌면 이 말 속에 인류의 숙제인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이 화해할 수 있는 열쇠가 담겼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렉 몰튼슨이란 선량하고 용기있는 한 미국 청년이 이슬람의 오지에서 펼친 인류애의 드라마다. 그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두메산골에 불과 10년 남짓한 세월 동안 무려 78개나 되는 학교를 세웠다.

청년의 박애정신은 전쟁으로 이슬람을 제압하려는 부시행정부의 정책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지난 4년간 이라크 전쟁에 무려 8천억 달러를 쏟고 숱한 생명이 희생됐으나 갈등은 날로 악화돼 왔다.

반면 몰튼슨은 비폭력 평화의 길을 택했다. 이슬람 어린이들이 종교적 편견에 물들기 전에, 균형 있는 교육으로 서방문화를 이해케 하는 게 더 옳다고 확신한 것이다. 토마학 미사일 하나 값인 50만 달러면 학교 20개도 넘게 짓는다. 교육의 힘은 어린이들에게 분별력을 길러 훗날 탈레반 같은 극렬주의자들의 세력에 훨씬 효과적으로 맞서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의 첫 걸음은 극히 미미한 인간사랑에서 비롯되었다. 1993년, 37살 나던 해, 몰튼슨은 K2 등정에 오른다.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6살 때 탄자니아로 이주, 아버지 사역을 도와온 그는 열악한 환경의 제3세계인들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정상을 불과 600미터 앞두고 조난당한 동료를 구하느라 등정에 실패한다. 그리고 하산 중 길을 잃고 콜피라는 산골마을로 찾아든다. 주민들의 극진한 간호로 건강을 회복한 후 돌아보니 학교가 전혀 없는 걸 알았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배움터를 세워 주리라고 결심한다. 그들과 처음 나눈 찻잔이었다.

파키스탄정부는 오지까지 학교를 세울 능력이 없었다. 이슬람 극렬분자들은 어린이들을 세뇌시키는 학교들만 곳곳에 세우고 있었다. 몰튼슨은 정상적인 학교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예상대로 탈레반 일당들은 끊임없는 살해위협과 방해공작은 물론, 납치까지 시도한다. 그러나 그의 박애주의 진심이 알려지면서 지방 유지들과 주민들이 그를 돕기 시작한다. 원주민들과 함께 벽돌을 나르며 학교를 하나씩 세워간다. 그들과 친구로 나눈 둘째 찻잔이었던 셈이다.


학교 건축비용은 미국 내에서의 모금을 통해서였다. 허나 이슬람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신으로 모금활동은 가시밭길이었다. 첫해 580통 편지를 보냈을 때 NBC 앵커, 탐 브로커가 보내온 100달러가 전부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진정성과 희생적인 노력이 알려지면서 독지가들이 참여하고 미국 어린이들이 페니 모으기 운동으로 동참하며, 미 국방부에서도 관심을 보인다.

평화를 향한 그의 학교세우기 운동이 점점 미국인들의 공감을 얻어 가는 중이다. 그는 사랑의 벽돌을 쌓으며, 이슬람 인들과 관계가 증오에서 믿음으로, 불신에서 신뢰로 변하도록 오늘도 세 번째의 차를 성실히 달이고 있다.


김희봉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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