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부실장, 임상심리치료사)
언젠가 TV에서 방영된 북극곰의 노는 모습을 흥미롭게 시청한 적이 있다. 이빨로 서로를 물어뜯는 듯 보였지만 다정스런 눈빛으로 치고받는 모습을 볼 때 진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었다. 북극곰과 같은 맹수들은 놀면서 싸우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힘 조절이나 사냥하는 법을 배운다. 어찌보면 그들에게 놀이는 생존의 필수조건인 것이다.
동물들과 매 한가지로 우리 인간들도 놀이를 통해 사랑을 전하고, 즐거움을 느끼며, 삶을 배우고, 성장해 나간다.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는 양수속에서 장난치는 법을 배운다. 어떤 때는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발로 차기도 하고 손가락을 빨기도 한다. 영아와 유아는 엄마와 아빠를 대상으로 놀이하는 법을 배운다. 눈을 마추치고 목소리를 흉내내기도 하며 손바닥을 치기도 한다.
어느 날은 아빠 등에 올라타서 말타기를 하다가 마루에 떨어진 장난감을 주어 주기도 한다. 학령기나 사춘기의 자녀들에게도 놀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자녀들의 게임과 컴퓨터 중독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모들을 상담해 보면 하나같이 자녀들과 놀아주지 않는 것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씻고 밥먹고 자기 바쁜 삶이라고 항변한다. 그렇다면 하루 종일 집에서 자녀들은 무엇을 하고 시간을 보낼지는 명약관야한 일이다. 그 지루한 시간을 컴퓨터와 게임을 하지 않고는 마땅이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녀들과 놀 때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먼저 명심해야 할 것은 놀이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큼 집중해서 원하는 대로 놀아주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바빠서 놀 수 없다라기 보다는 놀아주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부모-자녀와의 놀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대개 부모들은 놀아주면서도 머리속에 학습을 염두해 둔다. 즉 놀이하는 동안 무엇인가를 가르
치려 한다. 그러면 자녀들은 그 시간을 진정한 놀이시간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엄마가 혹은 아빠가 또 훈육한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놀이시간만은 자녀들에게 전적으로 자율권과 의사권을 주어야 한다. 자녀가 중심이 되고 부모는 따라가는 소위 아동중심적인 놀이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는 자녀에게 일주일에 하루 30분동안 너와 특별한 놀이시간을 가질거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규칙적으로 지속해 나갈 것이고 그것은 너와 가지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자녀가 그 이유를 물으면 자세히 왜 하는지, 그리고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설명해 준다.
놀이장소는 특별한 곳으로 정하는 것이 좋다. 넓을 필요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않는 조용한 곳이면 더 좋다. 장소가 마땅치 않을 때는 거실을 구획해서 사용하는 것도 괜찮다.
놀이장소에 들어갈 때 부모는 이렇게 자녀에게 설명해 준다. 여긴 특별한 장소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그런데 만약에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게 되면 알려줄게. 그리고 나서 부모는 자녀가 놀이하고 싶은 대로 따라가 준다. 이때 부모는 놀이에 집중해야 하고, 자녀가 취하는
행동을 함께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은 부모가 건성으로 놀아주고 있다고 금새 알아차리게 되기 때문이다. 놀이가 끝나기 5분전과 1분전에 놀이의 종료를 예고해 주고, 시간이 끝나면 다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놀아줄 것을 약속하고 놀이를 끝내면 된다. 자녀와 함께하는 특별한 놀이시간은 그렇게 거창한 것도 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요구되는 부담스러운 일도 아니다. 반면, 자녀와 부모에게 가져다 주는 유익은 매우 클 것이다. 자, 이제 자녀와 30분간의 놀이시간을 정해서 실행하는 것은 우리 부모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