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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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자녀양육

2008-12-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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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부실장·임상심리치료사)

얼마 전 모 일간지에 ‘프랜들리 대디’에 관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요즘 젊은 아빠들 사이에서 과거의 엄격했던 부모의 역할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친구처럼 대해 주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그런 아빠들을 ‘프랜들리 대디(Friendly Daddy)’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 인기있는 아빠가 되려면 돈만 잘 벌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사업과 직장생활로 바쁜 요즘 부모들에게 자녀와 얼마나 놀아주느냐고 물으면 대개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이들 밥 먹이고 잠자리에 들기 바쁘다는 대답을 듣곤 한다.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와서는 숙제는 했느냐?, 씻고 밥 먹어라, 자 이제 자야지라는 대화만으로 자녀를 훌륭히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오산일 수 있다.

최근 부모-자녀 간에 문제가 있어서 찾아온 한 어머니에게 하루에 몇 시간동안 자녀와 놀아주느냐?고 물었더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라는 대답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치료실에서 손쉽게 놀 수 있는 보드게임을 꺼내놓고 함께 게임을 하도록 했더니 엄마와 자녀 모두 무척 어색해 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어머니에게 하루 30분 동안 자녀와 놀아주는 과제를 내주었다. 동시에 어머니에게는 놀이의 중요성과 아동 중심으로 놀아주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훈련시켰다. 집에서 놀이하는 장면을 찍어온 비디오와 치료실에서의 부모-자녀 놀이를 관찰한 것을 토대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양육태도와 애착문제를 조금씩 개선해 나갔다. 그렇게 몇 달을 훈련하였더니 늘 우울해보이고 공격적이던 아이의 행동과 감정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녀양육 문제로 늘 힘들어하던 어머니도 양육에 대한 자신감을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다. 놀이는 사랑이나 일과 함께 인간의 행복과 안녕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놀이는 우리의 삶을풍성하게 하며 즐거움을 줄 수 있다. 또한 놀이는 스트레스나 지루함을 달래주기도 하며,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시키며, 나아가 창의적 지능 발달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키기도 한다. 인간은 엄마 배속에 있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놀기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놀이하며 살아간다. 놀이는 모든 인간발달 단계에 요청되지만, 특히 12세 미만의 아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언어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며 자신감과 부모에 대한 신뢰감을 높일 수 있다. 또한 문제행동을 가진 아이들에게서는 보다 긍정적인 행동으로의 변화를 유도해낼 수도 있다. 한편, 부모들은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의 감정과 생각을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아이들을 격려하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으며, 효과적인 대화를 나누며, 아이들을 더 신뢰하며 부모의 역할에 대한 자신감도 회복할 수 있다.

이렇듯 놀이가 자녀와 부모 모두에게 주는 유익은 엄청나다. 혹시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변명으로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는 부모들이 있다면 오늘부터라도 변화를 시도했으면 한다.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매일 10분만이라도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를 선택해서 함께 놀아준다면 부모-자녀 간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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