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프업/ 제9회 한미청소년 미술대전 은상 조윤상 양
2008-11-25 (화)
조윤상양(13세)은 어린 소녀다운 순수함과 나이에 비해 성숙한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젖살이 통통한 얼굴에서 느껴지듯이 어머니 한순옥씨가 “얘는 언니에 비해 너무 어린애 같아서 걱정이다”고 할 정도로 천진난만하다. 그러나 막상 또래들이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에는 관심이 없고 책읽기를 즐기며 성당에서 봉사활동 하는 것을 좋아한다. 세 살 많은 언니 윤주양에게는 셈 내거나 싸우는 법이 절대 없는 의젓한 동생이다.
한국일보가 주최하고 한미현대예술협회에서 주관한 ‘제9회 한미청소년 미술대전’에서 은상을 받은 그의 그림 ‘전쟁의 상처’에서는 또래 아이들이 전혀 생각지 못하는 정치, 사회적인 관심이 드러난다. 탁자위에 놓인 과일에 부시 대통령과 빈 라덴, 이라크 사람들의 얼굴들을 그려 넣었다. 일종의 반전 메시지인 셈.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한 달에 걸쳐 조금씩 그림을 완성해 나갔다. 윤상양을 지도하고 있는 화가 이미숙씨는 “ 어리고 순진하게만 생각했던 윤상이가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풍자적인 그림을 그리겠다고 해서 내심 놀랐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엄마랑 1주일에 한 번씩 화실에 오는 데 걱정 많은 엄마를 다독거릴 정도로 맘이 깊다”고 전했다.
윤상양 가족은 2006년 뉴욕에 왔다. 많은 한인 부모들처럼 은행원이었던 아버지 조환기씨와 요리학원에서 근무하던 한순옥씨는 자녀들의 교육과 장래를 고려해 이민을 결심했다. 한국에서 어린 시절부터 언니와 함께 음악과 미술 과외활동을 했었지만 미국에 온 후 1년간은 학업과 영어에만 전념하다가 올해부터 다시 언니는 음악을 윤상양은 미술을 함께 병행하고 있다. 퀸즈사이언스 고교에 다니는 언니는 공부도 잘하지만 피아노 실력도 뛰어나 맨하탄 음대 프리칼리지 지도교수와 카네기 홀 웨일 홀 무대에 서기도 했다.
윤상양은 미술대전 입상자 전시회에 걸린 다른 학생들의 작품에 대해 “ 나보다 훨씬 잘 그려 부럽고 나도 저렇게 잘 그리고 싶다”고 말하지만 최연소로 은상에 입상한 것은 커다란 자질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윤상양의 장래 희망은 예술가도 의사도 변호사도 아닌 요리사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요리의 색과 모양을 멋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요리사의 꿈은 진지하다. 자신이 요리전문가였던 어머니는 그래서 걱정이라고 한다. 미국에까지 온 이상 좀 더 ‘그럴듯한’ 직업을 가지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다. 윤상양의 목표가 계속 유지될 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어쨌든 본인은 집에서 열심히 요리를 만들며 실습을 한다. 그리고 그 덕은 언니가 보고 있다. 일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부모 대신 어른스런 윤상양이 볶음밥이며 초밥 등을 만들어 언니를 대접한다.
현재의 학교생활과 미국 생활에 만족하고 있지만 윤상양도 이민 초기인 6학년 때 다른 인종 학생들로부터 일종의 집단 놀림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크게 마음고생을 하진 않은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떼를 쓰는 대신 “한국이나 미국이나 못된 애들은 있는 법 아니겠어” 라고 ‘쿨’하게 받아들였다. 한국에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있냐고 묻자 “ 있어요. 근데 뭐가 되던 아주 훌륭한 사람이 돼서 성공한 다음에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정말 요리사가 될 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지만 ‘넌 할 수 있어’, ‘천재가 될 수 있어, 파이팅’ 등의 귀여운 격문이 붙어 있는 책상을 보면서 일단 윤상양이 맘을 먹는다면 뭐든지 이루어 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금의환향의 꿈도 이룰 것 같다.은상과 함께 받은 상금 300달러를 어디에 썼는지 궁금해졌다. 아이팟? 게임기? 옷? 윤상양은 흐뭇하게 웃으며 책상위에 있는 저금통을 들어보였다. “ 돈을 모아서 꼭 엄마, 아빠
가 좋은 차 사는데 보태드릴 거예요. 우리 집 차가 너무 오래된 중고차거든요.” 어머니는 “얘, 미국사람들은 우리 같이 낡은 차들도 많이 몰고 다녀”라고 항변하지만 얼굴은 흐뭇하다. 참 착한 딸이다.
<박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