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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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소신껏 살면 되는 것”

2008-11-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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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의 엽기의사 이라부를 내세워 나름의 정신병적 증상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웃음이라는 처방전을 선사했던 일본최고의 이야기꾼 오쿠다 히데오.

가볍고 쉽게 읽히면서도 묘한 치유력이 느껴지는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남쪽으로 튀어!’에서 절정의감각을 선보이고 있다. 사회주의 혹은 이데올로기를 향한 이상이 전설처럼 되어버린 21세기에도 여전히 혁명적 성향을 굽히지 않는 이치로는, 그저 남들 눈엔 한낱 사회부적응 골칫덩이일 뿐이다. 그래서 사회는 그를 때늦은 혁명놀이에 열을 올리는 ‘구시대의 유물 같은 놈’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사실 이치로는 그저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고 소신껏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단지 그 신념이 사회와 조직에 반하는 것인지라 사사건건 ‘황당한 시추에이션’을 야기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뿐이다.그러나 트러블 메이커 이치로의 틀을 벗어난 일련의 언동들은 어느 순간 웃음을 넘어 묘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나아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여기에 해학과 위트로 포장된 얼토당토않은 해프닝들을 통해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을 들춰내고 현대 사회의 단면을 조망하는 오쿠다 히데오의 재능이 숨어있는 것이다. 한때 탄압과 사회모순에 ‘정의’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열정적으로 항거했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사회시스템 안에 안주할 수밖에 없었던 대부분의 기성세대들, 뚜렷한 이슈도 좌표도없이 부표처럼 떠도는 젊은 세대들, 답답한 현실에서 늘 일탈을 꿈꾸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훌쩍 떠날 수도 없는 우리들에게 “인생? 자기 소신껏 살아가면 그만”이라는 명쾌한 해답을 내려 주고 있다.

이소설의 화자인 초등학교 6학년생 지로에게 이치로는 이렇게 말한다.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이 말은 결국 작가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궁극의 메시지일 지도 모른다.

이형열(알라딘 서점 대표)
www.Aladdin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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