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허리케인의 도시

2008-10-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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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는 미 남부의 예향(藝鄕)이다. 재즈의 요람이요, 현란한 마디 그라(Mardi Gras) 축제 속에 다 민족, 다 문화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코스모폴리스다. 전통 깊은 프랑스 정착지에 들어서면 이 도시가 낳은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 ‘왓 어 원더풀 월드(멋진 세상)’이 울린다. 폐부 깊은 데서 쥐어짜듯 읊조리는 그의 탁음 속에 맑은 영혼이 가득하다.

“초록빛 나무와 붉은 장미/ 당신과 날 위해 만발해 있지요/ 홀로 생각한답니다/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고//…/ 하늘에 뜬 무지개/ 이웃 사람들 얼굴에도 피고/ 서로 손잡으며/ 사랑을 고백하지요/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지요.”

흑인 노예의 사생아로 이 도시의 빈민촌에서 자라 이젠 전설이 된 루이 암스트롱은 뉴올리언스의 진정한 상징인지도 모른다. 미시시피 강이 대 장정을 마치고 멕시코 만으로 빠져나가는 대륙의 하수구 같은 저지대에 무지개처럼 핀 도시. 초기 불란서 이민들의 혼혈후예인 크레올과 케이전들이 백인과 흑인, 커리비언들과 함께 섞여 살며 다양하고 감각적인 예술혼을 창조해 낸 멋의 도시. 가톨릭 전통신앙과 사육제의 주술이 공존하며 인간의 고락을 자유분방하게 표현하려 몸부림친 영감의 도시. 그 거리에서 암스트롱은 트럼펫을 들어 ‘웬 더 세인트 고즈 마칭인”을 신들린 듯 불었던 게다.


헌데 낭만의 도시 뉴올리언스가 근래 부쩍 잦아진 허리케인의 엄습으로 계속 무너지고 있다. 특히 2005년 8월의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치명타였다. 둑이 터져 도시의 80%가 수몰됐고 1,500여명이 죽었다. 무연고 시체가 떠다니고 번영의 상징 수퍼 돔은 수용소로 변했다. 최강국 미국에서 제3세계 방글라데시를 방불케 하는 참사가 벌어지고 또 속수무책으로 방치된 사실에 세계가 경악했다. 게다가 허리케인 리타의 연이은 강습은 도시의 소생의지를 완전히 꺾고 말았다.

멕시코 만에 연한 뉴올리언스는 평생 허리케인의 사정권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리라. 허나 유독 피해가 극심한 이유는 낮은 지대 탓이다. 1803년 미국이 나폴레옹에게서 루이지애나 북서부 땅을 사들인 후 노예매매가 성했던 뉴올리언스는 부촌이 됐다. 인구가 늘자 시 당국은 외곽에 둑을 쌓고 펌프를 설치해 저지대 입주를 부추겼다.

미시시피 강이 쏟아내는 토사가 쌓이던 늪지대가 사라진 것도 이즈음이었다. 점점 흙의 유기물 산화와 지하수 과용으로 지반이 꺼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도시의 절반이 해수면보다 낮아진 것이다.

게다가 뉴올리언스를 둘러싼 멕시코 만의 자연 방패막이 섬들과 사구(砂丘)들도 사라졌다. 수십 년 간 택지 개발과 연안 석유시추시설 설치로 2,000평방 마일의 사구들이 없어진 게다.

올해도 9월이 오기 무섭게 허리케인이 떼로 몰려오고 있다. 강도 4의 구스타브가 뉴올리언스를 또 강타했다. 쿠바를 초토화한 뒤라 다소 둔화됐지만 총 30억달러의 피해를 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하나 호가 뒤따라 바하마와 캐롤라이나를 휩쓸었다. 그리고 연이어 출격한 폭격기처럼 허리케인 아이크가 추석전후 텍사스와 갤비스턴 만을 맹폭하고 지나갔다.

왜 최근 들어 허리케인들이 더 강력해지고 잦을까? 기상학자들은 더워진 바다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난 1,300년 중 북반구 해양온도가 올해 가장 높다. 물론 지구 온난화 탓이다. 더운 바다는 웬만한 폭풍우를 강력한 허리케인으로 만드는 에너지원이 된다. 1970년 이후 허리케인의 강도는 2배나 강해졌다는 보고다.

옛 사람들은 바람(風)은 벌레(蟲)들이 일으키는 줄 알았다. 허나 초강력 허리케인이 사람 탓인 지구 온난화 때문으로 밝혀졌다. 아마도 무릇 범(凡)안에 벌레 충(蟲)대신 사람 인(人)자를 새겨 넣어야할 날이 곧 올지도 모른다. 폭풍우 개인 날 모든 시름 잊고 루이 암스트롱의 ‘멋진 세상’을 다시 듣고 싶다.

김희봉
수필가·환경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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