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려울 때 더 빛나는 인문학의 지혜

2008-09-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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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올 때 보았네
이윤기 지음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문제지만 큰 문제는 아니고 조금 있으면 잡힌다고 한지가 1년도 넘은 것 같은데, 패니메이와 프레디 맥 두 공룡이 흔들거리더니 이젠 아예 월스트릿 투자 은행들이 말그대로 통째로 녹아내리고 이 물결이 쓰나미가 되어 우리네의 생활터전인 메인 스트릿까지 휩쓸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많은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미국 자본주의의 물질만능과 도를 모르는 탐욕이 빚어낸 또 다른 9.11을 보는 듯하다. 사람살이가 배제된 채 온통 목표와 성과,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는 무차별적인 수단의 채택으로 인해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도 궁핍한 현실이 바로 우리가 처한 현실인 것이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당국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아주 근본적으로 살펴보자면 인문학의 위기와 이 모든 현상이 결부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든다. 경제가 잘못된 것 같지만 이는 결국 시스템의 문제요, 시스템의 문제는 그것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문제라는 생각인 것이다.

탁월한 번역 문학가이며 신화연구가로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글을 쓰고 여행을 하고 나무를 심고 삶에 대해 사유하는 진정한 자유인이자 영원한 청년인 인문주의자 이윤기의 산문집 ‘내려올 때 보았네’는 이럴 때 읽기 좋은 책이다. 어차피 문제가 터지고 나서 뒷북치듯 “내 그럴 줄 알았어”라는 논조의 경제학 분석가들의 말은 어쩐지 신뢰가 안 가는 것이다.

이 책은 말, 글, 책에 대한 깊은 통찰과 경험을 담은 ‘1부 글살이 책살이’로 시작하여, 2부는 ‘일본인에 대한 생각’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한일 관계를 전망하였으며, 3부는 ‘아, 베트남’이 실려 있으며 환경과 생태에 눈뜨게 해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시골에서 농사짓고 나무심으며 사는 일의 희열과 어려움을 전하는 ‘4부 나의 오이코스’, 일상의 여러 갈피에서 떠오르는 단상들을 다채롭게 풀어놓은 ‘5부 명창들 앞에서 노래 부르기’로 이루어져 있다.

투자 은행의 부도 사태 앞에서 태연하게 인문 교양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책을 읽어보신 분들이 공감해주실 줄 믿는다. www.Aladdinus.com

이형열/ 알라딘 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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