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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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광장그 여자의 아내 그 남자의 남편

2008-09-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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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빠가 애를 낳다’란 기사를 신문에서 읽는다. 세계 최초의 남성 임산부로 유명세를 탔던 토마스 비티(34세)씨가 오리건 주에서 건강한 딸을 출산 했다는 얘기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여성으로 태어났고 남성으로 성 전환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자궁, 난소 등 생식기 일부를 유지한 덕택에 시험관 시술로 아기를 가진 것이다. 이렇게 완벽하게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에게 남성이란 칭호를 붙일 수 있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몇 년 전 캐나다 밴쿠버여행을 마치고 LA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내 바로 옆 좌석에 앉았던 백인 여자가 밴쿠버에 살고 있는 자기 아내를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해 당황한 적이 있다. 그녀는 밴쿠버에서는 일찍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결혼 수속중이라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곧 함께 살 수 있을 거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모들의 반응을 물으니 결혼 당시 자기는 영국에서 살고 있었는데 부모와 친척들이 모두 먼 곳까지 와서 축복해 주어 아무 탈 없이 결혼식을 잘 치렀다고 했다. 그녀의 얼굴은 자신감에 차있었고 매우 행복해 보였다.


또 한 사람은 포모나에 있는 한 대학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중국인 청년인데 가족관계를 이야기 하던 중에 자기 남편 자랑을 했다. 서로 너무 사랑하고 있으며 취미와 생각이 같은 동반자를 만난 것이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동양인인 그의 부모가 그 아들이 동성 간의 부부 연을 맺으려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무척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나 내 염려와는 다르게 그들 부부는 언제나 명절에 함께 부모님을 찾아가는데, 부모님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일체 묻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 청년의 말에서 그 부모가 설령 감당하기 힘든 일일지라도 장성한 아들의 인격을 존중해 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첫 대면시 자녀가 몇이냐고 물었을 때 아무 말 못하던 그 청년의 입장을 나중에야 알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다시는 어느 누구에게도 배려 없이 이런 질문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신문이나 잡지에만 나오는 얘긴 줄 알았더니 이제는 가까운 곳에서 이런 얘기들을 자주 접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허용하면서 결혼식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반대론자들의 시위도 계속돼 동성결혼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신분석학이나 다른 고전적인 심리학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동성애적인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즉 프로이트는 모든 인간이 적극성이나 남성다움과 수동성이나 여성다움에 대한 성향을 함께 유전적으로 물려받지만 정상적으로 아동기 때부터 이러한 소질들은 분명하게 형성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어린아이는 정상적인 성인으로 발달해 가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행동규범을 배운다. 그러면서 이러한 경향이 나중에는 이성애적인 경향으로 성숙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동성애는 진화론 상으로 학습된 이상적인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성인의 동성애자가 된 근본적인 원인은 아동기 당시의 성적인 발달에 기인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동안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여겨왔었는데 앞의 두 젊은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을 이해하는 쪽으로 내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만약에 내 자녀나 가까운 지인들 가운데 이런 과제가 던져졌을 때 과연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을까?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집안의 가전제품에서부터 손에 들고 다니는 전화기와 이어폰까지 매일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일상 생활이 순조롭지 못한 세상이 되었다. 거기에 또 한 이처럼 사고의 폭을 넓혀놓지 않으면 젊은 사람들과의 대화도 단절되고 자녀들과의 사이에도 두터운 벽이 생기게 되며 사회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다.

젊은 부부들의 출산율도 저조해 인구는 점점 감소되고 있는데 “여자의 아내 남자의 남편들이 늘어날수록 그 일은 더 심각해진다.” 면서 걱정하는 남편의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귓전에 들린다. 오늘 뉴스처럼 정말 남자도 아이를 낳는 시대가 오면 우린 또 얼마나 놀라고 복잡해질까? 제발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더 큰 변화가 없기를 갈망 한다. 내가 감당치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홍 알리샤
수필가/화가.‘순수문학’수필당선. 재미수필문학가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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