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오프라 윈프리를 키우자
2008-08-25 (월) 12:00:00
어려웠던 과거 사회발전으로 승화
미국에서는 TV 토크 쇼가 매우 인기 있다. 그 가운데 오프라 윈프리 쇼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몇 차례 시청해보아도 필자로서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중년의 흑인 여자가 진행하는 이 토크 쇼가 왜 미국인들에게는 그토록 인기가 있는지 궁금하였다.
윈프리는 미시시피주 시골의 가난한 십대의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까지 할머니 밑에서 자란 그녀는 너무나 가난하여 감자부대를 기워 만든 천을 옷 대신 몸에 걸치고 다녔다고 한다. 그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할머니는 세 살배기 원프리에게 글자를 가르쳤으며, 교회도 데리고 다녔다. 이때 윈프리는 성경 글귀를 암송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할머니는 윈프리에게 매우 엄격하였다.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거나, 조금이라도 잘못된 행동을 저질렀을 때는 가차 없이 혼쭐을 내주었다.
윈프리는 여섯 살 때 엄마를 따라 밀워키로 옮겨 갔고 그곳에서 고등학교도 다녔다. 이때 학교 스피치 팀에 가입하였고, 전국 대회에 나가 두 개의 스피치 종목에서 1등과 2등을 차지하였다. 이때 얻은 수상 경력으로 테네시 주립대학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고교 시니어 시절부터 지방 방송국에서 파트 타임으로 뉴스를 진행하기 시작하여 대학 2학년까지 지속하였다. 뒷날 윈프리는 자신이 대중 앞에서 말할 수 있도록 격려해 준 분은 바로 할머니라고 떠올리며, 그녀는 “나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느낌을 주셨다”고 말하였다. 윈프리는 가장 젊은 뉴스 앵커요, 최초의 흑인 여성 뉴스 앵커가 되었다.
이제 오프라 윈프리는 미국에서 어쩌면 세계에서 기장 영향력 있는 여자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미국 TV 토크쇼 호스트, 미디어 거물, 그리고 박애주의자’로 소개되고 있다.
윈프리는 1998년 ‘오프라의 에인젤 네트웍’이라는 자선단체를 세워,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전 세계의 사람들을 고무하고 아울러 비영리단체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 기관은 이미 5,000만 달러 이상의 기금을 모았다. 윈프리는 이 기관을 운영하는 모든 경비를 본인이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기금은 모두 축적된다.
윈프리가 세운 이 재단이 수행하는 일 가운데 교육에 관련된 사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녀는 이미 250명의 아프리칸-아메리칸 남학생을 대학에 보냈다. 오프라 윈프리는 또 5,000만 달러라는 거금과 무엇보다도 귀중한 그녀의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사우스 아프리카에 오프라 윈프리 리더십 아카데미라는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에 재학중인 대부분의 학생들은 가족을 잃었거나,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다. 윈프리는 자녀를 낳지 않았다. 그녀에게 이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들이 바로 자신의 딸들이기 때문이다.
윈프리는 2011년이면 방송 계약이 끝난다. 그녀는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은퇴한 뒤, 그녀가 세운 학교 안에 지은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그 집에서 그녀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같은 종류의 침구류와 식기를 사용할 생각이다.
윈프리는 어려서부터 깊은 슬픔과 좌절을 겪으며 자랐다. 생계를 찾아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부모 대신 할머니 손에서 자라나 어린 나이에 강간을 당하고 한때는 마약에도 빠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누구 못지않게 남의 슬픔과 좌절, 분노를 이해할 줄 안다.
윈프리는 자신의 어둡고 슬픈 과거를 숨기려거나 열악했던 자신의 처지를 숨기기보다, 지금도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것을 자신이 살아가는 목적으로 삼고 있다. 우리 한인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재능있는 영역을 계발하여 자신이나 가족의 영달을 목표로 살기 보다는, 사회 속에서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213)500-9067
알렉스 정
<윌셔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