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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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연습

2008-07-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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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문을 펴면 습관적으로 부고 난을 본다.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뜻보다 그가 얼마나 오래 살고 세상을 떠났는지 나이부터 살펴보게 된다. 우선 내 나이를 기준으로해서 나보다 일찍 죽었다면 “젊어서 죽었구나” 하고 동정의 마음을 보내고, 나보다 훨씬 많은 나이로 죽었으면 “꽤나 오래 살았구나, 나도 그 정도 살 수 있을까” 하고 내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
참으로 한심한 행위일지 모르나 나이가 많아지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다.
삶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아슬아슬하다. 걱정이 없는 날이 없고, 일이 꼬이고 뜻대로 되지 않아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날들이 있다. 또는 죽지 못해 산다고 말들을 한다. 살기가 힘들다는 뜻인데 그래도 죽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만큼 죽음은 사람들에게 두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회사 퇴직자들의 모임에서 격월간으로 발간하는 잡지가 있다. 잡지의 회원 동정에 부고 난이 있는데 선후배의 죽음이 두 달에 10여명 이상 활자가 되어서 나온다. 2007년 1년간 사망한 총 94명의 사망자를 묶어 연령별로 통계를 내보니, 50대가 10명, 60대가 19명, 70대가 50명, 80대가 14명, 90대가 1명으로, 70대의 사망자가 전체의 50%를 차지했다.
세계 보건기구(WHO)가 2007년 발표한 평균 수명을 보면 한국 남성은 73세, 여성 80세로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77세이다. 퇴직자의 수명과 WHO가 발표한 한국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73세로 거의 같다. 통계로 보면 나이가 70세쯤 되면 3년밖에 더 못산다는 수치가 나온다. 하여간 죽음이 근처까지 왔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지인의 장례식장인 로즈힐에 간 일이 있다. 수없이 많이 깔려있는 묘비를 둘러보면서 인간의 나고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며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의 죽음은 가을 나무에서 하나, 둘 떨어지는 낙엽과 다를 게 없는 자연의 조화가 아닌가.
나는 묘비를 훑어보면서 이들은 얼마나 살았으며 삶은 어떠했을까 궁금해 졌다. 1900년대의 죽은 자가 있는가 하면 얼마 전에 죽은 자도 있다. 그러니까 공동묘지는 고금의 사람들이 시공에 관계없이 같이 사는 장소이다. 먼저 간다고 아쉬워할 것 없고, 뒤에 간다고 좋아할 것도 없다. 앞으로 같은 장소에서 같이 살게 될 것이므로.
나이가 노년에 이르면 죽음을 연습해야 할 것 같다. 죽음이란 언제 어느 시간에 약속을 하고 오는 것이 아니므로 살아있는 동안 차분히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죽음의 연습을 위해서는 우선 고독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할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주위의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사라지게 마련이다. 다정했던 친구도 가버리고, 자식들도 제갈 길로 떠나고, 영원히 함께할 줄 알았던 배우자도 훌쩍 가버리면 우리는 혼자가 되어 빈 마음속에 고독이 밀려온다. 그래서 고독과 동반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평생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버려야할 것 같다. 가지고자 하는 집착에서 마음을 비우는 태도야말로 홀가분하게 죽을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김일홍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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