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육 알아보기-나도 뿔났다
2008-06-02 (월) 12:00:00
난 요즘 한인타운에서 특수교육 개론이란 우리 대학의 강의를 한국어로 하고 있다. 너무 좋다. 지난 17년 동안 미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느끼지 못한 새로운 맛이 있다.
중학교 때부터 사용해 온 영어라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고, 처음 한국말로 하는 강의라 더 많은 준비시간과 어휘의 어려움 때문에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한국어의 묘미에 후련함이 느껴진다. 나는 미국 제자들도 다 예쁘고 각자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깨어나는 것을 보며 가르치는 재미를 솔솔 느꼈지만 한국 학생과 수업을 하니 편안함과 정겨운 느낌이 가르치는 재미에 덤으로 주어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한인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이유와 언어에 장벽이 없는 1.5세와 2세들도 한인 타운으로 회기하는 현상도 바로 이 끈끈하고 정겨운 우리 문화의 편안함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몇 주간의 행복감은 곧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행복의 한가운데서 불안함이 소용돌이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인학생들이 중 고등학교 때까지는 학업의 우수성이 두드러지고 마치 모든 한인학생들이 아이비리그 대학이나 우수한 명문대학에 척척 들어가는 것 같은 내용이 하루가 멀다하고 한인신문을 도배하다시피 한다. 내 글이 실리는 이 교육란도 한인의 교육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명문대를 졸업한 이후의 한인은 어떠한가?
미국교육을 받고 미국문화에 적응을 해 미국사회로 동화해 들어가는 사람의 부류와 명문대 공부를 마치고도 한인타운으로 들어와 개업을 하거나 부모의 사업을 이어받아 한인사회에서 살아가는 부류의 두 종류로 크게 나누어진다. 이것은 지도자의 부재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도자는 자신만의 유익을 구하지도 않고 편안함에 안주하지도 않아야 한다.
미 주류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한인사회를 등에 없고 한인사회의 도움을 얻어가는 경우는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고, 미 주류사회의 문화적 불편함보다는 같은 동족과의 편안함과 돈벌이에 안주하는 모습도 지도자로서의 취할 길은 아닌 것이다. 이민 1세가 아직도 우리 한인사회의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문화적 차이 이외에 언어적 장벽으로 그 지도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내기에 어려움이 있다.
많은 한인기관장들이 그랜트를 써서 미정부기관의 보조를 받아 한인사회의 발전을 이루겠다는 구태의연한 말들을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런 지도자 위치에 있는 분들도 쉬운 길을 택해 한국정부에 도움을 청하거나 한국 정치참여에 더욱 큰 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위대한 능력과 자원을 가진 한인사회가 지도자의 결핍으로 미 주류사회 내에 그 힘을 보여주지 못하는 현실에 나는 뿔이 난다. 현재 특수교육 개론을 한국어로 듣는 수강생 모든 분들이 한국어로 듣는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특수교육계의 한인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자청하길 원한다.
좀 불편하더라도 그것을 이겨내고 주류사회의 특수교육계와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언어가 불편한 한인 분들에게 특수교육 개론을 한국말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나의 목표가 아니다. 그분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지도자의 역할을 맡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격려하고 돕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나 나에겐 세상을 단번에 바꿀 능력이 없다. 그래서 뿔이 난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의 능력의 한계에 대한 화가 치민다. 그래서 오늘도 난 성난 뿔을 달래기 위해 기도의 시를 읊조린다.
“나에게 평온함을 주시옵소서.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 들일 수 있는,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바꾸어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작은 변화도 감지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