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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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면서 드러나는 사랑의 미학

2008-05-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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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다 권여선 외 지음

한국에는 정말 많은 문학상들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전통이 있고 권위가 있는데다 독자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상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 이상문학상일 것이다. 어떤 이는 매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챙겨 읽음으로서 한국 문학, 특히 한국소설의 현주소를 확인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꽤 수준이 있는 몇몇 소설가의 작품이 대여섯편 함께 실려 있어서 다채로움이 있다고도 말한다.

올해의 수상작은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라는 작품인데, 이외에도 정영문의 ‘목신의 어떤 오후’, 하성란의 ‘그 여름의 수사(修辭)’, 김종광의 ‘서열 정하기 국민투표-율려, 낙서공화국 1’, 윤성희의 ‘어쩌면’, 천운영의 ‘내가 데려다줄게’, 박형서의 ‘정류장’, 박민규의 ‘낮잠’ 등 7편이 더 실려있다.


대상 수상작인 ‘사랑을 믿다’에서는 주인공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나와 그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얼핏 평범한 것 같지만 매우 독특하다.

총 6년으로 구성되어 6년 전에 스물아홉인 나는 그녀 말고 다른 사람이랑 연애를 시작했으며 그 후 3년이 지난 서른두 살에 실연을 당하고 그녀를 만나 술자리를 가지며 그녀가 나를 사랑했었음을 알게 되고 오늘 서른다섯이 된 내가 단골술집에서 다시 3년 전을 회상하며 사랑의 어긋남을 말하고 있다.

문학평론가는 아니지만 감히 평론하자면 이 소설의 매력은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믿고 실연을 통해서 사랑을 알게 되며 감추면서 드러내는 미학을 보여준다. 또 심사위원의 말대로 책 속엔 ‘아포리즘’적 문체가 돋보인다. 예를 들면 ‘훼방을 놓아야 거기에 희망이 있다는 걸 안다’ ‘고통은 무례를 용서하게 만드는 법이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런 고통을 안겨주고 유유히 빠져나온 적이 있었다는 사실’ 등등. 작가가 얼마나 문장 하나하나를 공들여 고르고 다듬고 했는지를 보여주는데, 스토리라기보다는 스타일이 빛나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형열(알라딘 서점 대표)
www.aladdin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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