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엇이 우리 마음을 힘들게 하는가

2008-04-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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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아잔 브라흐마 지음·류시화 옮김

얼마 전 KBS다큐멘터리 ‘차마고도’를 보았다. ‘순례의 길’이라는 제목의 2부는 티베트의 젊은이 3명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길이 매끈하든 자갈이 깔려 있든, 얼음판이든 진흙탕이든, 열사의 여름 햇볕 아래서든 영하 20도의 한겨울이든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손뼉을 세 번 치고 바닥에 온 몸을 던지는 ‘오체투지’를 하면서 7개월에 걸쳐 2,0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하루도 쉬지 않고 순례하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주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고행을 하면서 무엇을 기원하는 것일까. 여기에 젊은이 한 사람은 담담하게 말한다. “오직 한가지, 세상 사람들이 평화롭기만을 기도했다”고. 이것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고 속물이 되어버린 내가 부끄러웠다. 넓은 마음,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무엇을 읽을까 생각하던 차에 눈에 들어온 책은 아잔 브라흐마의 책이었다.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의 지은이 아잔 브라흐마는 영국 런던에서 기독교인으로 태어났다. 그는 기독교 학교를 다니고 성가대에서 활동할 만큼 신실한 신앙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러나 17세 때 학교에서 우연히 불교 서적을 읽던 중 자신이 이미 불교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장학생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했으나 인생에서 폭탄을 만드는 일보다 더욱 가치 있는 일을 하기를 바랐고 그 후 태국으로 건너가 스스로 삭발하고 수행승이 되었다. 이 책은 아잔 브라흐마가 스승 아잔 차와 함께 지낸 일화, 지난 30년 이상 수행승으로 지낸 자신의 영적 성장과 경험들, 고대 경전에 실린 이야기, 농담, 그리고 절에서 행한 법문 등을 모아 만든 책이다.

이 책은 몸·마음·영혼을 위한 안내서이며, 마음속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삶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원하는 어떤 것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불교 서적들이 종종 범하는 난해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피하고 있다. 그리하여 불교 승려가 쓴 책이라는 편견을 잊게 만든다. 그는 재미있고 뛰어난 스토리텔러일 뿐 아니라 깊은 통찰력을 지닌 수행자로서 절망의 순간에도 우리의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형열(알라딘 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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