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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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2008-04-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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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신문사에서 가장 정다운 말, 가장 듣기 좋은 말이 무엇인가를 설문 조사 했는데 그 중 1순위가 “힘내”였다. 그리고 “어디 아프니?” “수고했다” “밥은 먹었니” “고맙다” “최고야” “사랑해” 등의 순서로 응답이 많았다는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언어 중에서 가장 정다운 말로 “힘내” 라는 말이 1순위로 뽑혔다니 그 의미는 그만큼 산다는 것이 고되고 아프고 외롭고 힘들어서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함을 뜻하는 것이다.

말 속에는 사람을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이 있다. 공격하고 상처주고 비판하며 헐뜯는 말은 사람을 죽이는 말이나 “힘내 ”처럼 용기를 주는 말은 얼음 사이를 뚫고 솟아오르는 봄날의 새싹처럼 심장을 뛰게 하는 분발력을 갖게 하는 말이다.


시각 장애인이면서 재벌 사업가로 알려진 미국의 톰 설리번은 자기 인생을 바꾼 말은 딱 세단어 “WANT TO PLAY?” (함께 놀래?)라고 했다. 어렸을 때 실명하고 절망과 좌절감에 빠져 고립된 생활을 할 때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아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이야말로 자기가다시 세상 밖으로 나 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 말을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 함께 놀래” 라는 말은 사람을 살리는 따뜻한 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언어는 9살짜리 손녀가 자주 입에 올리는 “괜찮아” 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 웬지 가슴이 찡해진다. 제 어미가 일을 가지고 있어 내 손이 많이 가고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절로 한국말을 서투르게나마 배워 늘 불편 없이 나와 소통을 하니 기특하고 고맙다.

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은 노년의 인생에 평화의 꽃을 피우는 시간이고 쓸쓸한 이 세상에 정을 붙이게 만들어 준다. 할머니와 나누는 대화중 손녀는 늘 “괜찮아 괜찮아”라는 말로 대답을 해준다. 좀 더 줄까 하고 물으면 “아니 괜찮아. 할머니 먹어” 한다. 나눔과 베품의 말이다 .

“할머니가 오늘 친구하고 약속이 있어 외출하는데 어떻게 하지”하면 “괜찮아 할머니 잘 갔다 와” 한다. 이해의 말이다. 때때로 영어로 대화를 나눌 때 얼른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손녀에게 “미안해. 할머니 발음이 나빠서” 하면 “괜찮아 걱정 하지마. 나 알아 들어” 한다. 용기를 주는 말이다.

감기라도 들어 힘들어 하면 “할머니 많이 아퍼? 내가 기도했으니 괜찮아 질꺼야. 조금만 참아” 한다. 위로의 말이다. “친구 없어 심심해서 어떻게 하니” 하면 “괜찮아. 나중에 친구 만들면 돼” 한다. 희망의 말이다. 할머니 실수로 손녀가 좋아하는 주스 컵을 깨어 너무 미안해 하면 “괜찮아 할머니. 안 다쳤어?” 한다. 용서의 말이다. 9살짜리 아이 지만 마음을 대하여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속이 트여있는 아이다.

미국 경제가 불황이라고 주위사람들은 탄식한다. 세상사 뜻대로 되는 기쁨 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안타까움이 더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까지나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행복과 불행 사이를 오가며 산다. 앞으로 나갔던 그네는 곧 뒤로 물러서게 되고 뒤로 물러섰던 그네는 곧 앞으로 다시 나오게 된다. 인생의 기쁨과 슬픔도 행복과 불행도 바로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

“괜찮아! 괜찮아! 힘내. 조금만 참아. 곧 좋아질 거야” 하는 정다운 말을 서로 서로에게 건넬 때 어떤 불황이든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또한 이를 헤쳐 나가는 것이 인생살이의 보람이 아니겠는가.

김영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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