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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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2008-03-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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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사진을 시작하니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도전의 연속이다. 사진 자체가 물론 가장 큰 도전이지만 그 못지않은 도전은 체력이다. 지난 달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사진 촬영을 떠났을 때였다. 눈 덮인 산길을 고생고생해서 찾아갔지만 마지막 순간에 체력이 달려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도 가지를 못했다.

올해 1월과 2월에는 캘리포니아에 보기 드물게 많은 눈과 비가 내렸다. 새하얀 눈 산에 가슴이 설레어 스키어들은 스키어들대로, 사진동호인들은 그들대로 무리를 지어 산으로 향했다. 우리도 마음을 같이한 사진 동료들과 2월 중순 요세미티로 향했다. 요세미티에는 몇 개의 폭포가 있는데 그 중 한 폭포가 사진작가들에게는 ‘특별한 폭포’로 알려져 있다. 해질 무렵이면 석양의 햇살이 그 폭포에 집중적으로 쏟아져 설산과 대조를 이루며 신비스런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멀리서 카메라의 파인더로 폭포를 보는 것만으로도 거기까지 간 보람이 있다고 한다.

몇몇 사진 동료들과 새벽에 길을 떠나 산 입구에 도착하니 점심시간 무렵이었다. 차들이 붐비고 있었는데 모두들 체인을 다느라 정신이 없었다. 길이 미끄러워 체인을 달지 않으면 입산할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도 체인을 달기로 하고 그동안 짬을 내 간단히 요기를 했다. 모두들 배가 고파 차 속에서 차가운 샌드위치 한쪽에 끓여온 커피 한 잔씩으로 허기를 달래고 길을 떠났다. 제한속도는 시속 10마일인데 길이 미끄러워 더 이상 빨리 갈 수도 없었다. 지그재그 길을 조심조심 운전 하는데 한 시간쯤 가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모두 긴장이 되어 말 한마디 없었다. 눈발은 차츰 진눈개비로 변하더니 바람까지 불어 시야는 흐려지고 차안의 공기가 어둡기만 했다. 우리는 천신만고 끝에 4시간이 걸려서야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어둡기만 했던 우리 일행의 얼굴이 순간 환해졌다. 흐렸던 날씨도 맑아지며 햇살이 우리를 반겼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폭포로 향하는 길의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있었다. 모두 차에서 내려 각자의 짐을 지고 걸어가야만 했다. 결국 그 날은 숙소로 가서 쉬고 다음날 다시 사진을 찍으러 가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모두 날씨를 관찰하느라 분주했다. “오늘은 그 찬란한 폭포를 작품으로 건져야 할 텐데…” 하며 가슴이 설레었다. 낮 동안 설경을 찍으며 모두 저녁 때를 기다렸다. 드디어 석양이 가까워져 어제의 그 곳으로 가보니 밤새 내린 눈으로 통행은 더욱 힘든 상태였다.

나는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다시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앞장 서 걷는 젊은 작가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작가들은 어느새 멀리 가고 있었다. 나는 다리가 후들거려 발을 눈 속에서 건질 힘이 없었다.

“힘들게 여기 까지 왔는데 이대로 물러서야 하나?”
나는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둠이 깔려서야 그들은 돌아왔다. 지친 모습에 비해 눈빛은 반짝 거리며 그 젊은 작가는 말했다. 눈이 너무 깊어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고 맨발로 그 눈길을 걸었단다. 그러나 자기가 만들어온 작품에 대한 기대로 그는 마치 세계를 정복한 양 행복해 했다. 그 모습이 대견하고 아름다웠다. 그곳을 떠나며 나는 결심했다. 체력을 단련하여 내년에 꼭 다시 도전하리라.

에바 오/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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