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단풍 선(禪)

2008-03-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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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50도 정도로 날씨가 푸근해진 늦겨울이었다. 나는 오하이오의 숲 속 한 가운데에서 나무가 활활 타는 야외용 스토브 위에 액체가 펄펄 끓는 냄비 주위를 화가, 조각가들과 함께 서성거렸다. 네 개의 냄비 중 첫 냄비엔 물처럼 맑은, 두번째엔 누런색의, 세번째엔 갈색의, 그리고 네번째엔 단풍시럽 색의 액체가 펄펄 끓고 있었다.
그 액체들은 실제로 단풍시럽이었다. 뒷마당에 단풍나무가 있는 사람들이 나무의 진을 모아 시럽을 만드는 계절이 온 것이었다. 소위 ‘뒷마당 시럽 만들기(Backyard Sugaring)’인 것이다. 자신의 뒷마당에서 직접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이 일은 북미와 캐나다 사람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관습의 일부이다.
단풍시럽이 이렇게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라 나는 해외 특히 아시아로 여행을 갈 때 자주 이것을 들고 간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선물은 그곳에선 그다지 쓸모가 없다. 아시아 음식이 단풍시럽과 잘 맞지 않는 것이다. 한국에서 약과를 만들 때 꿀 대신 쓴다면 모를까.
그 모임은 한 미술가 부부의 집에서였다. 부인은 도예가이고 남편은 금속 조각가이다. 이들은 10년 전 오하이오 남쪽 언덕진 시골에 38 에이커의 큰 땅을 샀다(미국 중서부의 장점 중의 하나는 아직 땅이 비싸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곳에 집을 짓고 커다란 작업실을 지었다. 많은 부분이 그들의 손으로 지어졌다. 그곳은 자연에 가깝고 정신을 추구하는 작품들을 만드는 그들에게 완벽한 정신적 피난처와 다름없다.
그들은 매해 시럽 만드는 날을 정해 놓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하루 종일 함께 시럽을 만든다. 그 며칠 전에 그는 열 그루 정도의 단풍나무에 조그만 쇠를 박고 그 밑에 나무진을 받는 통을 걸어둔다. 단풍 진은 신기하게도 꼭 물과 같다. 맛이 약간 달 뿐이다. 그 물을 거의 하루 종일 끓여야만 식탁에서 먹는 진갈색 시럽이 된다.
그는 이 일을 위해 따로 야외용 철 스토브를 직접 만들었다. 그 스토브는 꼭 검은 황소처럼 생겼다. 등 쪽엔 피자헛이 이사하면서 버렸다는 커다란 사각 냄비 네 개가 걸려 있고 엉덩이 쪽엔 연통이 꼬리처럼 뻗어 올라 있다. 뿔이 있는 가하면, 코 쪽엔 고삐가 걸려있고, 성기까지도 있다.
한 친구가 ‘선(禪)’ 상표의 차 봉지를 담은 빈 컵을 내게 건넸다. 그리곤 세 번째 냄비의 갈색 액체를 담아주었다. 물이라곤 나무가 낸 물 뿐인, 김이 오르는 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달짝지근하니 맛이 아주 그럴 듯했다.
우리 몇몇은 이 ‘선(禪)’ 차가 든 컵을 들고 집 뒤의 숲 속 더 안쪽으로 걸어들어 갔다. 구불구불 걸어가니 철물 받침에 받쳐져 땅 위에 약간 떠 있는 16각형 건물이 나왔다. 지름 6미터 정도의 이 건물은 우주선 같기도 하고 암자 같기도 했다. 다만 뾰쪽한 지붕 꼭대기에 두꺼운 철사가 이리저리 연결되어 2-3 미터 더 올라가다가 거미줄 모양의 철제 의자가 공중에 뜬 것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건물은 그들이 참선을 하는 곳이었다.
마치 은행 금고문과 같은 느낌의 철문을 여니 텅 빈 실내의 대나무 마루가 깨끗했고 향긋한 내음이 났다. 배의 작고 둥근 창처럼 생긴 유리창으로 신선한 숲의 바람이 들어왔다. 실내에서 참선을 해도 좋고, 지붕 위의 철제 의자에 앉아 숲의 나무와 언덕을 내려다보며 참선을 해도 좋은 곳.
한국여성 한명, 일본여성 한명, 그리고 미국인 남녀들인 우리는 불교인들의 참선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남성이었던 아볼로키테시바라(관음보살)가 동양으로 가서 여성이 된 이야기. 일본에선 ‘캐논’이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카메라 회사 ‘캐논’이 바로 그 이름이란 이야기. 그녀가 일부 일본인에겐 예수의 어머니 ‘매리’ 로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
이 달짝지근한 차를 마시면서 얘기하는 동안 너무나 확연했던 동양과 서양의 구별이 점차 분별키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매리’와 ‘관음보살’ 처럼. 단풍시럽으로 만들어진 ‘선(禪)’ 차처럼. 그리고 오하이오 시골의 암자처럼.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흐르는 듯싶었다. 숲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별들이 밝게 비치기 시작했다. 미중서부에서는 ‘큰 곰’ 별자리이지만 한국에서는 ‘북두칠성’인 별들이 우리의 조용한 숲을 밝혀 주고 있었다.

한국과 미국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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