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반가운 현대 미술관

2008-03-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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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의미의 그림은 보이지 않고 대신에 텍스트만 존재하는 작품들, 포르말린액 속에담긴 동물의 사체, 회화 랄수도 조각 이랄수도 없는, 화폭을 벗어난 전혀 새로운 쟝르가 현대 미술이다.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 토마스 쿤의 파라다임 이론, 데리다의 해체, 메를로-퐁티의 현상학, 롤랑 바르트…등등 우리들에게 낯선 용어들로 정당성을 부여받고 ‘꿈보다 해몽’인듯한 비평가들의 도움을 받으며 이해해야 하는 현대미술은 우리들의 미적 감각을 당황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는 현대미술을 가까이 접할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LA를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 중심지로 성장 시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LA 카운티 미술관이 진행중인 3단계의 확장사업의 첫 열매인 브로드 현대미술관(BCAM)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
LACMA의 가장 큰 후원자이며 1984년 브로드 예술재단을 시작한 브로드 부부의 재정적인 후원에 힘입어 진행중인 확장 사업은 기업이 문화를 지원하고 정부는 세금혜택으로 보답하는 문화적 부가가치를 높이는 프로젝트다.
시야를 방해하는 기둥이 없는 단일 공간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큰 이 새로운 전시공간은 예술가와 감상자 간의 의사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미술의 현장성 요구 조건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 또한 미술품 감상의 중요 변수인 채광을 자연광으로 처리했다.
세계문화의 중심도시인 뉴욕에 비해 상대적인 문화의 빈곤, 특히 현대미술 전시를 자주 접할수 없었던 LA에서 BCAM 개관으로 우리들이 진정한 의미의 현대미술을 배울수 있는 경험의 장소가 생겼다. 제대로 된 현대미술관을 코리아타운 가까운 거리에 갖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미술관은 손쉽게 자녀들과 값진 시간을 보낼수 있는 소통의 장소이며 문화와 예술이 존중되는 가정 분위기에서 자녀들의 잠재적인 창의성은 꽃피게 된다. 난해하고 숨겨진 의미를 따라 숨바꼭질을 하는 현대미술과의 가장 쉬운 소통방법은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관을 자주 찾는 것이다. 어느 순간 정신에 불이 켜지듯 예술적 사유를 경험할 수 있다.
다양한 감정과 욕구의 표현이며 경험적 산물인 예술, 그중에서도 현대 예술은 해석속에서 작품의 생명이 요동하는것을 느끼게 된다. 재현(representation)으로서의 미술이 빛을 바래고 “그린다”라는 타동사가 그리는 대상이 없이 자기 지시성을 갖게된 현대미술은 오랜 시간 공을 들인후 친해지는 내성적인 친구와 같다.
안개가 낀 날 종이컵속의 커피향을 맡으며 202개의 가로등으로 만들어진 BCAM의 아름다운 야외작품 아래서 가족 혹은 친구들과 함께 비평가들의 설명을 잊고 각자의 미학적 견지에서 의견을 나누며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작가들의 시선을 읽어낸다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또한 그것이 그저 편하게 다가와서 경험하기를 바라는 BCAM 후원자 엘라이 브로드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메이 정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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