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크로-운수 좋은 날
2008-02-28 (목)
어릴 적 읽은 책 중에 현진건 작가의 ‘운수 좋은 날’은 소녀 시절 필자에게 사회의 쓴 맛을 엿보게 하는 좀 색다른 책이었다.
억세게도 일이 꼬이는 것을 인력거 꾼 김첨지의 하루를 통해 역설적으로 표현한, ‘좁은 문’ 같은 여느 책과는 확실히 다른 책이었다.
왜 사람들은 ‘재수가 없다’ ‘운이 좋다’는 것에 집착을 하고 필자 역시 본인의 잣대로 ‘일이 잘 풀린다’ 혹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는 걸까?
세월이 지남에도 그다지 덕을 못 쌓은 탓으로 반성도 하여 보지만 고객들 간의 감정 분쟁에는 사실 난처할 때가 많다.
풋내기 에스크로 오피서 시절부터 굳세게 의리(?)를 지켜 주시는 고객분들 중에는 ‘일을 깔끔하게 잘 해 주어서…’ ‘내 일처럼 해주는 든든함이 좋으니까…’ 하는 것이 끈끈하게 이어주기도 하지만, ‘별로 안 좋은 일이 없었기 때문에…’가 진짜 이유인 경우가 압도적이다.
물론 일부러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도록 하지는 않겠지만 본의 아니더라도 행여나 마음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늘 긴장하지 않는 오피서가 없다.
“오늘 길에 차가 너무 막혀서 혹 오지 말라는 건지 원…” “그 에이전트하고는 이상하게도 하는 것마다 잘 안 돼…”
시간이 늦으면 마음이 조급해져서 더 막히는 것 같고, 일이 잘 안 되는 에이전트와는 너무 터프하게 거래를 시도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누구 말처럼 ‘내 탓이오’하며 살 수는 없더라도 자신을 뒤돌아보지는 못한 채, ‘운’만 탓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1월 말 타운의 한 식당 에스크로는 모든 것을 ‘운대가 맞아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계신 셀러의 고집으로 산전수전을 겪어야 했다.
오픈하는 날부터 ‘손이 없는 날’로 약속을 해야했고 클로징 날짜도 원하는 날짜로 반드시 맞추어야 했으므로 은행 융자 스케줄과 재료의 배달, 무엇보다 ABC라이선스 이전 날짜를 맞춘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잘 참아준 바이어 덕분에 무사히 넘어가기는 했으나 살얼음판이었다고나 할까.
절대 비밀이었던 매상 체크 기간에도 셀러를 거슬리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바이어는 에이전트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클로징 이전에 사업체에 발도 들이지 못함으로서 견적도 받지 못한 채 감정이 쌓일 대로 쌓여갔다.
결국 바이어가 융자는 받았으나, ABC라이선스 이전을 원하는 날짜에 맞추기 위해 마지막 클로징 서류에 사인을 늦춤으로서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이상하게 하는 것마다 줄창 깨진단 말이야”아니면 “신기하게 막힘없이 잘 된다니까”하는 에이전트나 고객을 만날 때마다 좋은 면이건 나쁜 면이건 겁나기는 마찬가지다.
언제 그 신드롬이 깨어질런지 모르는 일이기때문이다. 한 순간에 ‘재수있는 사람’이냐 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되는 것에 대해서 속이 쓰라릴 때가 많다.
우리는 특히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거나 해석을 달리하는 일이 많아서 억울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따지는 것은 감정을 더욱 상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기도 하지 않은가. 늘 전투태세를 하고 따지는 고객과 그 반대로 맞서지 않고 대충 너그럽게 넘어가는 고객의 발란스로 타운은 그 활력을 유지하는 듯하다.
부동산 에이전트나 은행의 융자 오피서나, 그리고 에스크로 오피서 누구도 매매가 잘 안되기를 바라는 이는 없다. 일부러 골탕을 먹이려는 이도 없고 물론 재수 없기를 바라는 일도 절대 없다.
만약 한 번 뜻하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면 다시 기회를 가져봄으로 더 좋은 결과를 가질 수도 있고, 더불어 ‘동고동락’의 결속을 다질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의 약한 모습들로 큰 이익을 그르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모두가 많은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고 사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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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365-8081
제이 권
<프리마 에스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