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인광장- 시

2008-02-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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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인생

정처 없이 물길 따라
떠돌아다닌 인생
철조망 건너오며
승냥이에게 여동생 물려주고

도봉산에 자락에
나이 파묻고
빌려온 학사모 쓰고
완장 찬 팔뚝이 굵다.

가방 이고지고
장군들 눈치 보며
고난의 삼바 춤추며
마야 문명 따라 다닌다

밤마다 아이들 끌어안고
데낄라 병 입에 물고
여인들 눈물을 안주삼아
배씨떼기 두드린다.

그지발싸개 동여맨 발
누런 바다 북쪽 산
헌 아들 허리춤 꼭 잡고
큰 바다 건너 바라본다.


이준구
월간순수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회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미주지역사무국장, 재미시협·미주크리스찬문협 회원.


떠도는 섬

티티카카 호수 위에 떠있는 갈대섬들 물속, 땅 깊숙이 장대를 꽂아 떠내려가지 못하게 한다는데 갈대를 베어 두껍게 얹고 겹쳐 쌓아 견고한 요새처럼 터를 잡고 집을 지어도 무게 따윈 상관하지 않아 조금조금 물결에 떠밀려 흘러간다 바람에 쉬이 날려간 갓털 쫓는 넋 끝에 한평생이 미련을 떨치지 못하게 하는가 모질게 중심을 심어 얽어매도 어느 틈에 또 다른 핑계에 맡기고 축축하게 젖고나 온몸으로 떠돈다 누구나 삶의 껍질 안에 품고 있을 섬들은 어떠할까 휘어질 듯 조마조마한데도 방책 없이 꼼짝 못하고 이리저리 맘결 태우는 한살이 섬이 한참 멀리 떠나가고 있을 때 누구엔들 슬며시 다가와 물결치는 저 가슴의 슬픔에 잠기는 것, 마음의 고통에 뒤척거리는 것, 그리움의 눈시울에 뜨거워지는 것, 시시때때로 갈대속처럼 비어서 꽃이면서 별이면서 수없이 피우고 스러지며 우리도 생의 언저리 무너뜨릴 듯 어둠에 갇혀 떠도는 갈대섬 되어 흐른다

문금숙

재미시인협회 회장. 공저 ‘하오의 사중주’. 시집 ‘추억이 서성이는 마을’ ‘나의 바퀴도 흔들렸다’ ‘황홀한 관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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