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미있는 철학 소설

2008-02-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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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뮤리엘 바르베리 지음 | 아르테 펴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음악중에서도 유독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중에서도 멜로디 즉 선율이 아름다운 노래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취향은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는 취향에도 드러난다. 유독 스토리 라인이 선명한 소설이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지적으로 풍성하고 스토리와 사유가 풍성하게 범벅이 된 좀 철학적인 소설은 프랑스 소설의 전통인데 아무래도 친숙하지가 않다. 웬만큼 잘 된 소설이 아니고서는 한국에서 대접받기 어렵다. 하지만 제목이 특이해서인가,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예외인 것 같다. 소설가이자 고등학교 철학선생이기도 했던 모로코 카사블랑카 태생의 프랑스 작가 뮤리엘 바르베리의 이 작품은 예상을 깨고 한국에서도 대 히트를 하고 있다.
파리의 중심 지역이자 부자 구(區)의 하나인 6구와 7구는 예로부터 귀족들의 저택과 살롱이 모여 있던 상류층 지역인 쌩 제르멩 데 프레가 있는 곳으로 현대와 고전이 공존하는 부자 동네이자 멋진 동네이다. 이 부자들의 보금자리를 관리하고 청소하는 가난한 수위 아줌마인 르네는 15년 전 남편과 사별한 쉰네 살의 혈혈단신 과부이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의 삶은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풍요롭다.
르네는 문학과 예술, 학문과 독서에 대한 애정은 물론, 뛰어난 지능과 삶에 대한 범상치 않은 식견마저 갖추고 있다. 팔로마, 몇 달 후 자살을 결심한 12살의 이 천재 소녀는 이 아파트의 6층에 사는 부유한 국회의원의 똑똑한 막내딸이다. 소설은 같은 공간에 사는 이 두 명의 독특한 존재들이 전혀 서로 만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 둘 각자가 써 내려간 일상의 성찰(세계, 존재의 의미, 아름다움, 사랑, 분노 등등)이 서로 교차하면서 처음에는 잔잔하게, 중간에서는 울고 웃게, 마지막 장에서 이 둘의 극적인 상봉, 뜨거운 애정과 관심이 감동 깊게 그려지는 거대한 공감의 스펙트럼을 펼친다. 그때까지 이들은 만난 적은 없지만 같은 뿌리, 같은 심연을 가진 동포처럼 공감하고, 공명하고, 같이 울고, 같이 분노하고, 같이 웃는다. 폭넓은 문화적 식견과 지적인 취향을 지닌 독자들을 위한 좋은 소설이라 하겠다.
이형열(알라딘 서점 대표)
www.aladdin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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