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부모님들과 자녀들에게 권하고 싶은 북미의 역사와 문화 탐방
3)청각장애자들의 교사, 전화기의 발명가, 그리고 인도주의자였던 알렉산더 그래함 벨의 일생과 업적 II
주 온경(데이비슨 초등학교 도서미디어 교사, 새한국문화학교 디렉터)
전화기의 발명으로 백만장자가 된 알렉산더 벨은 노바 스코시아의 케이프 브레튼 섬에 300명의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대저택을 짓고 가족들과 지내면서도 때때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학교를 방문해 원생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들도 알렉산더 벨의 방문을 환영하였다. 특히, 알렉산더 벨은 어렸을 때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어버렸던 헬렌 켈러를 도와 ‘가시발성’(일명 비저블 스피치, Visible Speech)를 이용하여 말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였으며 그녀와 알렉산더 벨과의 우정은 딸들도 부러워할 만큼 돈독한 것이었다.
그 후 알렉산더 벨은 그 곳에서 사람을 수송할 수 있는 동그라미 모양의 큰 연과 기차보다 더 빠른 프로펠러가 달린 배 등을 발명하였다. 또한, 선원들이 바다에서 조난당했을 때 바닷물을 증류해서 마실 수 있게 하는 장치등도 발명하였다. 알렉산더 벨의 발명품들은 케이프 브레튼 섬의 캐봇 트레일이 시작되는 베덱의 알렉산더 벨 국립사적지에 소장되어있다.
그의 나이 68세 때인 1915년에는 역사적으로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대륙횡단전화선이 개통되었는데, 뉴욕의 알렉산더 벨은 샌프란시스코의 토마스 왓슨에게, 39년 전 전화선을 통해 그에게 첫 메세지를 보냈을 때 처럼 왓슨씨, 거기 있습니까? 이리와서 날 좀 봐요 라고 말함으로써 드디어 미대륙의 동서를 전화로 연결하였다.
그의 70세 생일 직전에 젊은이들에게 벨은 나이를 먹으면서 살아 생전에 세상이 발전해가는 것을 보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나는 전화기가 없었던 시절을 기억할 수 있어요. 라고 말했다. 이 전화기의 발명가가 1922년 75세로 이 세상을 떠났을 당시 전 세계에는 약 1,000만대의 전화가 가동되고 있었으며 1991년에는 4억 2,500만대의 전화가 사용되고 있었다.
베덱의 알렉산더 벨 국립사적지에 가면 아동이 직접 만져보며 탐색할 수 있는 디스커버(DISCOVER)과학관이 있다. 이곳에는 아동들을 위한퍼즐, 실험, 연 만들기 등의 코너가 있다.
알렉산더 벨은 어린 시절 죽은 동물들의 성대를 해부하며 만져보고 목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스스로 배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하면서 배우는(learning by doing) 교육”을 중시하였다. 그는 또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National Geographic Society)의 창립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그의 영향으로 오늘날 많은 사진들이 이 저널에 삽입되게 되었다.
알렉산더 벨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청각장애인들을 가르치는 교사였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영향과 청각장애인이었던 어머니와 부인의 영향 외에도 그의 타고난 뛰어난 능력, 인내심, 그리고 결단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알렉산더 벨의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부모들은 과학문명이 초고속으로 발달하는 오늘날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함께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식물원, 실체험(hands-on)과학관, 스포츠 경기장 등을 함께 방문해서 여러가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아이들이 관심과 적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분야가 있으면 그 분야에 관해 더 배우고 탐구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후원과 배려를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알렉산더 벨의 예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가족간의 유대관계도 개인의 성공에 있어서 중요하다. 가족간의 유대관계는 같은 문화를 공유할 때 더욱 깊어진다. 우리 한국의 언어 및 문화를 자녀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은 우선 대화가 한국어로 통하기 때문에 자녀들이 틴에이저가 되었을 때에도 부모와 자식 간에 좋은 유대관계를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노바스코시아 베덱에 있는 벨의 국립사적지 탐방을 마치면서, 자녀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결단력과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여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매진하면 언젠가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인식시켜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