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부모님들과 자녀들에게 권하고 싶은 북미의 역사와 문화 탐방
노바 스코시아 소재 벨 박물관 전경과 그 앞에 선 저자.
노바 스코시아의 베덱의 벨 사적지가 소장하고 있는 축음기, 그래포폰(Graphophone)
3)청각장애자들의 교사, 전화기의 발명가, 그리고 인도주의자였던 알렉산더 그래함 벨의 일생과 업적 I
2008년 한해 동안 이 지구촌에서 약 8억 1,000만대의 이동전화가 판매될 예정이라고 한다. 보급가 20달러 정도로 생산가를 낮추어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의 혜택을 보게 될 전망이다. 현재 미국에서 13.6%의 가정에 유선전화대신 휴대전화가 이용되고 있다. 8가정당 한 가구가 해당된다. 약 130년전만 해도 이곳에 있는 사람이 저곳에 있는 사람에게 연락을 취하려면 모스부호를 이용한 전신을 이용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으며, 사람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에 전화기의 가능성에 대하여 처음으로 생각한 사람은 알렉산더 벨로서 그 당시 그의 아이디어들은 사람들은 전화기를 장난감 정도로만 여겼을 뿐이었다. 1876년 3월 알렉산더 그램 벨은 그의 조수인 토마스 왓슨에게 첫 메시지를 보내는데 성공한다. 알렉산더 벨이 어떻게 해서 남들이 생각도 하지 못했던 전화기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을까?
알렉산더 벨은 1847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더 벨이라고 이름 지어졌으며, 11세 때 스스로 평소에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그래함이라는 중간 이름(middle name)을 지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언어장애자들을 위한 책을 썼고 그에 관한 강의도 했으며, 아버지는 언어 장애인들이 보고 발음할 수 있는 ‘가시 발성’(혹은 비저블 스피치,Visible Speech)이라는 특수 알파벳을 개발한 발성(speech) 교사였다. 이 그림 알파벳으로 농아나 언어장애자들이 발음할 때 혀와 입술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어머니 또한 청각장애인이었으나 그녀는 세 아들들이 어렸을 때 집에서 피아노와 공부를 직접 가르쳤다. 알렉산더 벨은 청각이 뛰어나 그 중에서도 가장 피아노에 소질을 보였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난 알렉산더 벨은 어려서부터 목소리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자신이 기르던 강아지의 성대를 누르며 짖는 대신 말을 하도록 실험을 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죽은 새나 두꺼비 등 죽은 동물을 길에서 발견하면 해부해서 발성기관의 구조에 대해 탐구하기도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열 살 정도 되었을 때에 알렉산더와 그의 형에게 허파와 목, 후두, 기도, 비강, 턱, 이빨 그리고 입술을 포함한 발음기(Speaking Machine)의 모형을 만들어보도록 적극 권유하였다. 두 형제는 푸줏간에 부탁해 양의 후두를 구해서 연구할 정도로 열심히 노력한 끝에 실험에 성공, 이 모형이 “엄마, 엄마”라고 소리를 내 이웃에
사는 여인이 실제로 아기가 우는 줄 알고 달려올 정도였다.
스코틀랜드에서 결핵으로 두 아들을 잃은 후 알렉산더의 아버지는 병약한 알렉산더마저 잃을까 염려한 나머지 바다건너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로 이민을 오게 된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위치한 큰 저택으로 이주한 후 알렉산더의 건강은 점차 회복되었고, 곧 보스턴에 있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농아들에게 말하는 것을 가르치게 된다.당시 부유층들이 많이 살던 보스턴은 알렉산더가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실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평소에 청각장애인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알렉산더는 전화기에 대한 구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당시 그에게 후원금을 낸 두 사람의 사업가들은 벨에게 그 당시 한 번
에 한 장씩만 보낼 수 있었던 전보를 여러 장 한꺼번에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고조파 전신기 (harmonic telegraph)를 개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전화기에 대한 비전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토마스 왓슨이라는 조수와 함께 연구에 연구를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 나머지
29세의 나이에 전화기 발명의 꿈을 이루고 만다. 이 최초의 전화기를 발명한 후에도 알렉산더 벨은 끝없는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후 보다 나은
성능의 전화기로 특허를 출원하고 벨 전화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알렉산더 벨은 자신의 제자였던 청각장애자 메이블이라는 처녀에게 결혼선물로 이 회사의 주식의 대부분을 주면서 청혼한다. 처음에는 전화기를 보고도 선뜻 그 필요성을 느끼지 않던 사람들이 점점 전화기 가설을 신청하게 되었고 도시와 도시간의 전화회선이 가설되었다.
주 온경(데이비슨 초등학교 도서미디어 교사, 새한국문화학교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