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아버님의 종자돈

2008-01-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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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건강을 간직하실 것 같던 시아버님이 얼마 전 아침 갑자기 전화를 하셨다. 막 출근하려는 남편에게 잘 들리지 않는 음성으로 “건강상태가 이상하니 다녀가라”는 것이었다.
아버님이 95세가 되도록 이런 일이 없던 터라 우리는 너무 놀라 그 길로 달려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혈압을 재어보니 평소 보다 상당히 높아 급히 종합병원 응급실로 모셨다.
검사 결과 생각처럼 위험한 상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왕에 병원에 왔으니 3일 동안 입원하며 종합진단을 받기로 하였다.
남편은 직장으로 떠나고 내가 남아 아버님의 시중을 들고 있던 중이었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아버님이 바지를 벗고 가운으로 갈아입으시던 중 바지에서 두툼한 뭉치 두 개가 떨어졌다. 뭔지 모를 그 뭉치들을 나는 일단 주워 내 가방 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하루의 검사가 끝나고 일반 병실로 들어가신 아버님에게 그 뭉치를 보여드렸다.
“이것들이 무엇인지 몰라도 제가 가지고 있다가 퇴원하시면 집에서 드릴 게요. 그런데 이 무거운 것들을 거추장스럽게 왜 주머니에 넣고 계셔요?”
아버님은 “평소 장롱에 보관하던 것을 오늘 아침 기분이 많이 좋지 않아 혹시나 해서 몸에 지녔다”고 하셨다.
오후에 남편이 부랴부랴 일을 끝마치고 오자 아버님은 심각한 음성으로 그 덩어리의 내력을 설명하셨다. 그 뭉치들은 그동안 자식들이 준 용돈을 안 쓰고 한푼 두푼 모은 돈과 중요한 증명서들이란다.
아버님은 젊은 시절 장학회를 설립하여 많은 활동을 하시다가 연세가 많아지면서 그만 두셨는데 그 돈을 종자돈 삼아 다시 장학사업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장학사업을 중도하차 하신 것이 못내 가슴 아픈 아쉬움이 되어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에게 부탁을 하시는 것이었다. 유언 아닌 유언이었다.
이 말씀을 하시는 동안 아버님의 표정과 눈빛은 싱그러운 풋사과 같이 풋풋한 게 꿈꾸는 소년 같았다. 그러나 큰돈도 아닌 그 종자돈으로 어떻게 장학사업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우리는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며 머릿속이 멍해짐을 느꼈다. 우리도 이미 나이 들어 여생을 아무 데도 얽히지 않는 채 홀가분하게 살려던 참이었는데 지금 장학회를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면 여간 부담스런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버님의 욕심 없는 절제된 삶이 존경스러웠다. 내 재산, 내 권위, 내 자식만을 챙기는 탐욕의 삶에서 벗어나 넓은 시야로 남의 자식의 교육을 사랑으로 보살피고 싶어 하시는 아버님의 정신에 감동을 받으며 그 마음을 형제들에게 전하여 그 뜻을 기리고 싶었다.

에바 오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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