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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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한국사람 끼리 존경하는 마음

2007-11-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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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 뉴욕시 교육국 학부모 조정관

큰 뜻과 선한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일 하다 보면 가끔 어처구니없는 생각지도 않은 일에 봉착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그 어려움을 주는 상대가 미국사람이 아닌 한국사람 일 때는 어이가 없고 울화통이 터져서 몸살을 앓기도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작년에 처음으로 주류의 노조와 일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일을 개척하는 것이 쉽지는 않으나 많은 한인학부모와 교포 사회에 도움이 될 줄 믿었기에 용기를 내어 선뜻 시도하려고 맘먹었다.

어떤 때든지 기회가 오면 그것을 붙잡아야 한다. 특히 그 기회를 주는 단체나 사람이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집단 또는 개인일 경우, 한인 사회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함께 일하면서 배우고 더 많은 친분이 생기고 인간관계가 넓어지게 된다. 이렇듯 새로운 일을 하면서 얻는 게 많아지므로 기회가 오면 얼른 붙들어야 한다. 무슨 일이든지 일을 계획하고 진행하려면 오랜 연구와 수차례의 미팅을 통해 성공적인 행사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인학부모를 상대로 진행되는 행사에서 한국어로 된 안내 책자들은 학부모들이 행사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긴 시간 퇴근을 미루고, 영어로 된 안내서를 정성껏 번역을 해서, 행사를 함께 준비하는 단체에 보냈다. 큰 단체의 경우 하는 일이 많고 워낙 규모가 커서 자체 내에서 인쇄 작업을 하기도 해 거의 한 달 전에 번역 한 내용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친절하게(?) 나의 번역을 본 어떤 한국인이 한두 자 틀렸으니 자기가 수정하겠다고 미국인 관계자에게 얘기했고 그 말을 믿은 관계자가 그 수정본을 기다리는 바람에 인쇄가 늦어지게 됐다. 그 결과 행사 당일에는 정작 한국어 인쇄물이 한인 학부모들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진행에 상당한 불편을 주게 됐다. 나의 철자가 틀렸다고 지적을 한 그 한국 분이 시간이 없어서 정정을 못한 것이다. 다 된밥에 재만 뿌린 결과가 됐다. 한국 사람과 미국사람이 같이 일 할 경우, 다른 한국인의 업무에 대해 평가를 내릴 때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을 비평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과연 한국사회에 도움이 되나 생각 해봐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 한 마디는, 여태까지 남이 추진 못 하던 일을 개척해서 열심히 하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안 된다. 또한 내가 미처 하지 못한 그래서 남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무심결에 내린 평가가 일의 진행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해당 관계자에게 불평하니 내 입장 또한 불편해졌다. 결국 묘하게 일이 꼬인 셈이다. 최근에 학부모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모국어로 제공하는 행사를 뉴욕시 교육국에서 선보였다. 통역기관이 생기기 전인 몇 해 전부터, 학부모와 관련한 큰 행사가 개최될 때마다 한인학부모들을 위해 자원 봉사를 해왔었고, 공립학교가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도록 오랜 노력을 기울였던 터라 너무 흥분됐었다. 신이 나 여러 언론에 이메일로 사실을 전하는 것은 물론, TV 및 라디오 방송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인학부모들에게 이 좋은 일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행사가 시작되기 바로 전, 나는 학부모들에게 나눠 줄 안내책자, 파워포인트, 노트북을 준비했고, 다들 피곤한 저녁시간, 참석자들과 진행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부지런히 도넛과 커피를 사다가 대접했다. 행사시작과 동시에 기쁜 마음으로 나도 앞자리에 앉아 경청하고 있었다. 한국말로 듣는 웍샵은 귀에다 단어를 쏙쏙 넣어 주는 듯 아주 이해가 잘됐다. 들으면서도 “참 잘 한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행사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참고로 모든 교육국의 새롭고 중요한 정보의 하단에는 거의 Ask your child’s School Parent Coordinator (당신 자녀의 학교 학부모 조정관에게 문의하세요.) 라고 써있다.

진행자는 난데없이 학부모 조정관은 머슴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질문과 모든 학부모들의 의문점들을 다 들어 줘야 하니까요. 참 안됐어요 라고 했다. 순간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이게 무슨 망발인가. 이 행사를 준비한 사람을 바로 앞에 앉혀놓고.’ 그 자리에서 반대의견을 말하고 싶은 생각이 치밀어 올랐지만 진행자의 입장을 생각해, 마친 후 학부모들에게 정정 설명을 했다.우리는 서로 입장을 달리할 수도 있고, 상대의 의견에 대해 비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감격적인 교육국 최초의 모국어 행사에서, 존중과 격식과 예의를 최대한 갖추어 진행자를 소개한 사람과 경청중인 학부모들 앞에서의 그의 이러한 처신을 나는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일주일동안 고스란히 감기몸살을 앓았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한국인끼리는 불만을 얘기하고 비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은근히 서로 도와주고, 혹 도와 주지 못한다면 최소한 방해나 인격에 손상을 주는 일은 하면 안 된다. 너나 할 것 없이 똑똑하고 모든 일에 열심인 우리 1세들이 먼저 모범이 되어 한국인의 긍지를 보여줘야
한다. 같은 민족끼리 돕고, 서로간의 차이점과 장점을 인정하며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훗날 훌륭하게 성장한 자녀들 역시 한인 사회에 기여하고 우리의 힘이 되는 사회인으로서 한 몫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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